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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세상의 이슈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돕고, 잘못된 지식과 가짜 정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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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대로 된다는 '말의 능력', 성경적인 개념인가?

 

말의 힘, 말의 능력으로 성공하는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된 유행입니다. 우리 성경 신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성경적으로 검증해 봅니다.

 

말의힘.jpg

 

1. 진짜 말이 씨가 될까?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입으로 뱉은 이야기, 주로 부정적인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많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말도 있는 것일 텐데...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 중에도 이 말의 효과를 굳게 믿고 가르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하는 차원을 넘어 절대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말한 대로 자신에게 저주가 된다고 한다. 심지어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뱉은 대로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도 사람이 말할 대로 시행하신다는 거다. 과연 말한 대로 되고, 말하는 것이 실제가 된다는 개념은 성경적인 것일까? 

 

우선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고, 걱정한다는 뜻이다. 개연성이 있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다 보니 자꾸 일이 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진짜 말이 씨가 됐다는 것뿐이고, 그래서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는 환갑까지만 굵고 짧게 살고 죽는다고 했는데 진짜 예순에 죽었다 치자. 그럴 때 말이 씨가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 모두가 딱 그만큼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환갑이면 꽤 장수이던 시절, 우리 할머니는 칠팔십까지 사시라고 하면 입버릇처럼 "에이, 귀신같애 못써" 하시며 일찍 죽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환갑을 넘기시더니 93세에 돌아가셨다.

동갑내기였던 우리 할아버지는 늘 우리 형을 두고 "큰손자 국민학교 가는 거나 보고 죽으려나..." 하셨는데, 증손자가 초등학교 가는 것까지 보시고 88세에 돌아가셨다.

 

자, 몇 가지 특별한 케이스를 가지고 말이 씨가 되니 말하는 대로 된다는 논리가 얼마나 가벼운 이야기인가. 게다가 사람의 수명이나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건데, 사람의 말대로 된다는 것이 과연 크리스천의 바른 생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냥 담백하게 '말을 조심하자' 하면 될 일이다.

 

 

2. 하나님은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는 분?

 

이렇게 말하면, 말의 능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말하는 대로 시행하시는 분이라는 거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열두 명의 정탐꾼 중 두 명은 긍정적인 답을 했지만 열 명은 두려워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했다. 그때 하나님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말한 대로(들린 대로) 시행한다고 말씀하시고, 그들 모두와 동조한 백성 전체는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바로 이 대목을 들어, 하나님은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말을 부정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진짜 그런가?

 

일단 정탐꾼들의 자세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전세를 판단하는데 모두가 같은 의견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인들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한 감정이다.

이 사건의 포인트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그 땅을 주시기로 '맹세'까지 하셨다(민 14:23). 포인트는 사안을 바라보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열 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부정한 것이 죄였다.

 

하나님은 정말 모든 경우에, 심지어 오늘날에도 귀에 들린 대로 시행하시는 분일까? 이 일화 하나로 하나님의 속성을 간단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게 불평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불평하는 것 즉 그들의 불평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되, 가 말하노라. 진실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사체가 이 광야에 쓰러지되 곧 너희의 전체 수에 따라 너희 중에서 스무 살이 넘어 계수된 모든 자들 즉 내게 불평한 자들이 쓰러지며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하여금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너희가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 14:27~30)

 

부정적인 말도 문제지만 27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 '불평하는' 악함이 문제라는 거다. 

 

내 영광과 또 이집트와 광야에서 내가 행한 내 기적들을 보고도 이제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저 모든 사람들로 인하여 그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격노하게 한 사람들 중 아무도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민 14:22~23)

 

이렇게 여러 번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 그들의 불평에도 그곳까지 이끄셨다. 하나님이 늘 사람이 말한 대로 행하시는 분이라면 왜 가나안 땅 앞까지 그들을 인도하셨는가. 광야에서 죽어도 백 번은 죽었을 그들이 아닌가.

그들이 만나에 족하지 않고 고기를 달라고 불평했을 때, 그리고 그들을 두고 모세가 자기 직분을 한탄했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의 불평대로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메추라기로 고기를 내려주신 분이었다(민 11장).

 

주께서 나를 이같이 대우하실진대 원하옵나니 내가 주의 눈앞에서 호의를 입었거든 즉시 나를 죽여 내가 내 비참한 모습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니라. (민 11:15)

 

모세가 죽여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 귀에 말한 대로 모세를 죽이셨던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법칙을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한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파악하거나 모든 일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방식으로는 어떤 교리도 창작해 낼 수 있다. 사이비들이 쓰는 방식이다. 그들이 왜 그런 방식을 쓸까? 아주 효과적으로 잘 먹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때', '그들에게', '그 상황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내게 불평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불평하는 것 즉 그들의 불평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진실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 14:27~28)

 

이것을 어찌 오늘날까지 적용해서 우리가 말한 대로 하나님이 시행하신다고 여길 수 있을까...

 

 

3.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방식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한때는 잦은 불평과 부정적인 말들을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엘리야는 이세벨에게 두려움을 느껴 죽기를 구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는 그를 죽이기는커녕 빵과 물을 마련해 위로한다.

 

로뎀나무 밑에 누워 자는데, 보라, 그때에 한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하니라. 그가 바라보니, 보라, 머리맡에 숯에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있더라. 그가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왕상 19:5~6)

 

군사를 계수하다가 7만 명의 백성을 잃은 다윗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다윗이 백성을 친 천사를 보고 께 아뢰어 이르되, 보소서, 나는 죄를 짓고 악하게 행하였사오나 이 양들 곧 그들은 무슨 일을 하였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하니라. (삼하 24:17)

 

그러나 하나님이 '내 귀에 말한 대로' 행하셨던가? 말은커녕 간구하는 기도조차 들어주지 않으셨다.

 

사르밧의 과부는 절망한 끝에 남은 양식을 먹고 자식과 함께 죽어버릴 작정을 했다고 엘리야에게 말한다.

 

그녀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게는 납작한 빵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이니이다. 보소서, 내가 나뭇가지 두 개를 줍고 안으로 들어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해 그것을 차려서 우리가 먹고 죽으려 하나이다, 하매 (왕상 17:12)

 

이때 엘리야가 죽겠다고 말하는 그녀를 나무랐는가? 그런 말을 했으니 저주가 임할 거라고 했던가? 놀랍게도 대언자 엘리야는 가서 생각대로 하라고 말한다.

 

엘리야가 그녀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가 말한 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해 작은 빵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뒤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해 만들라. (왕상 17:3)

 

이처럼 그 과부의 절망을 알고, 도울 방법을 마련한 뒤에 일단 순종할 것을 제안했다. 게다가 이 과부는 엘리야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돕도록 예정된 사람이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거하라. 보라, 내가 그곳의 과부 여인에게 명령하여 너를 돌보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왕상 17:9)

 

이처럼 하나님은 섬세하고 입체적인 분이시므로 단순한 잣대로 획일적인 해석을 하거나 어떤 일 한 가지를 보고 전체를 읽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분의 섭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확대해석하며,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며 아는 체, 잘난 체를 하고 사는가.... 말의 힘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는 논리도 바로 이런 식의 단순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주어진 복음은 단순한 원리지만, 그것을 계획하신 하나님은 단순하지 않으며, 놀랍도록 세밀하신 분이다.

 

우울한 시를 쓰는 시인이나 불행한 노래를 부른 가수의 삶이 그 시와 가사의 내용대로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부정적인 말이나 불행한 생각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며, 그것을 마치 불문율이나 늘 예외가 없는 법칙처럼 여겨서, 긍정적인 말을 어떤 주문처럼 활용하려는 것이 문제다.

 

진짜 중요한 것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이런 개념들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다. 하나님이 진짜 그런 분일까? 성경의 법칙이 진짜 그런 방식의 '말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는 거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전혀 그렇지 않다. 말의 힘에 관한 또 다른 문제점은, 하나님을 인간의 말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이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죽겠다, 미치겠다, 될 대로 되라, 망했다, 빌어먹을.... 등의 안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대로 시행하신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은 원래 죽게 된 존재이고, 망한 상태로 태어났다.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지고도 늘 찬양이 나온다면 그것은 진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입술의 열매와 신앙의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면 되지, 그런 말이 우리를 그런 지경으로 몰아간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수다.

 

 

4. 성경 밖에서 온 개념

 

그러면 이 원리가 어디서 왔는지 검증해보자. 살펴본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성경이 이것을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개념은 무언가와 섞이거나 다른 곳에서 시작된 개념이라고 의심해 볼 수 있다.

 

긍정의 힘으로 유명해진 조엘 오스틴. 기독교라고도 보기 어려운 그의 생각과 가르침을 따라가면 그 정체의 일부를 알 수 있다.

 

조엘 오스틴은 아버지 존 오스틴의 초대형 교회인 레이크우드 교회를 물려받았는데, 그의 생각이 곧 아버지의 생각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Word Of Faith(WOF), 즉 '믿음의 말'이라는 비성경적인 조직 출신이다. 이들의 생각은 말 그대로, 믿음으로 말을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상이다. 이것은 기독교라기보다는 마인드컨트롤에 가까운 뉴에이지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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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스틴(왼쪽)과 조엘 오스틴 부자

 

 

조엘 오스틴이 모르몬교(몰몬교), 즉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도 기독교라고 한 발언은 유명하다.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여긴다면 다른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모르몬교를 이단이라고 하면서도 이상하게 조엘 오스틴에게는 너그럽다. 그는 기독교 방송에도 버젓이 등장한다.

 

희한한 것은 이 긍정의 힘은 세상 사람들도 좋아하고, 불교에서도 환영하고, 온갖 처세술에도 자주 인용되어 이젠 모두가 반기는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국적인 지지를 호소하는 정당이 '긍정의 힘'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기독교인과 일반인들 모두의 마음을 얻으려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생전의 옥한흠 목사는 설교를 통해 조엘 오스틴을 비판하면서, 세상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 게 무슨 진리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는 자들도 환영하는 생각이 어찌 기독교의 진리일 수 있겠는가.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확증해준다.

 

모든 사람이 너희에 대해 좋게 말할 때에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대언자들에게 그렇게 행하였느니라. (눅 6:26)

 

그렇게 '말'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아무리 좋은 이유를 붙인다 해도 결국은 인생의 외적 성공, 결국은 부와 명예, 결국은 '잘 되는 나'를 만들자는 것 아닌가? 그것은 끝내 세상의 신 맘몬으로 귀결된다.

위 말씀의 앞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부유한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이미 너희 위로를 받았도다. 배부른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주리리로다. 지금 웃는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애곡하며 슬피 울리로다. (눅 6:24~25)

 

 

5. 말을 보시는가, 중심을 보시는가?

 

저주의 말, 신성모독의 말, 절망의 말은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지 않다. 그런 말을 했다면 회개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늘 희망과 격려와 긍정과 용기의 말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위선자일 것이다.

 

하나님은 긍휼함이 많으신 분이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도 전에, 아니, 알기도 전에 마귀의 자식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보내주셨다. 예수님조차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인간의 고통을 몸으로 느끼셨다. 이런 연약한 자들이 말한 대로 하나님이 시행하시고, 그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면 누구라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모두 잘못된 생각을 지녔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부분이 있고, 건전한 면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어디서 온 것인지 바로 보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은 비진리의 경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뉴에이지 사상과 혼합된 개념이며, 성경의 일부분만 들여다본 균형감 없는 생각이므로 혼란만 가져오기 쉽다.

 

어떤 경우에는 속의 생각이 어떻든 말을 잘하면 그대로 행하신다고도 하는데, 하나님은 귀에 들린 대로만 행하시지 않으며 우리의 속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나 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 사람의 행위들의 열매대로 그 사람에게 주느니라. (렘 17:10)

 

이처럼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며, 말의 열매가 아니라 행위, 즉 실천의 열매를 보시는 분이다. 그분은 심지어 우리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까지도 보신다. 그렇지 않고 말만 보신다면 공의롭지 않은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니 말이다. 말에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권능에 참된 능력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곧 너희에게 가서 우쭐대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권능을 알아보리니 하나님의 왕국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느니라. (고전 4:19~20)

 

인간의 말이 그 정도의 효력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해지려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종류라며 그 권리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고 하나님과 같은 종류로 창조된 것은 맞지만 하나님과 우리는 확연히 다른 존재다. 천사들이나 인간이 거룩하시다고 찬양하는 이유도 바로 그렇게 구별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지학이나 뉴에이지 사상의 핵심은 '일원론'이다. 인간을 신으로 동등하게 보는 개념이다. 하지만 바른 세계관, 바른 신관은 '이원론'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정확히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같지 아니하며 내 길들은 너희 길들과 같지 아니하니라. 가 말하노라.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들은 너희 길들보다 높으며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보다 높으니라. (사 55:8~9)

 

말로 무언가 암시해서 좋은 결과를 얻거나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고, 우리가 잘 모르고 악한 것을 원할 때도 더 차원 높은 것,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말과 삶을 모두 맡기는 것이 좋다.

 

사람의 말에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닐 것이며, 사람의 부정적인 말이 모두 실제가 됐다면 우리는 모두 그 말들에 의해 진즉에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성경의 법칙 자체가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이다. 바른 말과 좋은 말을 심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의 말은 생각 만큼 능력이 있지 않다.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고후 3:5)

 

 

 

김재욱_작가

  • ?
    마당이네 2018.12.13 00:51
    오래전에 읽었던 '더 시크릿'이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모든 일은 간절히 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참신한 X소리를 담고 있는...
  • profile
    라스트러너 2018.12.13 04:17

    이 성경적 진리만 잘 기억해도 기도할 때 부담이 확 사라집니다.^^
    때로는 한숨 섞인 "하나님 아버지..." 한마디가 천 마디의 주문(注文)보다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 profile
    David 2018.12.13 13:36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쾌하게 풀어주시니 무릎을 탁 ! 칠만 합니다. 김작가님의 글을 통해 많은 믿는 분들이 균형잡힌 사고와 믿음을 갖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profile
    스카이 2018.12.14 01:40

    교회 안에 들어온 샤머니즘을 잘 정리해 주셨네요! 

    "세상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 게 무슨 진리일 수 있느냐?"는 옥 목사님의 말이 얼마나 상식적인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ㅎㅎ

  • profile
    Joseph 2018.12.14 07:37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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