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설 쇠러 처가에 가던 길에 겪었던 일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2월 1일 아내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오후 12:30경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사는 북경에서 처가가 있는 내몽골 빠오터우까지는 약 700킬로미터로 쉬지 않고 운전해서 가면 보통 8시간정도 걸립니다. 중간에 두어 번 쉬면서 간단히 저녁도 먹고 하면 늦어도 밤 10시쯤에는 도착할 것으로 예상을 했습니다.
우려와 달리 귀향으로 인한 정체가 별로 심하지 않았고 (아마도 2/4부터 적용되는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정책으로 귀향 차량들의 출발 날짜가 분산되기 때문인 듯 합니다.) 북경 북쪽 만리장성이 있는 산악지대의 상습 정체구간을 통과한 뒤부터는 정말 상쾌한 여정이었습니다. 세 가족 모두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덕에 장시간의 운전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200킬로미터 지점의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고 저녁 7시쯤 500킬로미터 지점인 내몽골 수도 후허하오터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6시가 좀 지나서 저녁을 먹을 요량이었던 휴게소의 바로 전 휴게소를 몇 킬로미터 남겨두고 아들 녀석이 배가 고프다며 이번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으면 어떨지 의향을 내비쳤습니다. 명확한 요청도 아니고 해서 원래 계획한 곳까지 가서 저녁을 먹으며 쉬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쉬고 싶어하던 휴게소를 지나쳐 몇 킬로미터를 갔을 때 몇 십 미터 앞에서 주행차로로 가던 차가 갑자기 제가 달리던 추월차로로 반쯤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고장이 나서 갓길에 멈춰 있던 큰 화물차를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앞차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라 저는 달리던 차로의 맨 왼쪽(중앙 분리대)으로 바싹 붙였는데 그 순간 도로 위에 뭔가 커다란 쇠붙이 같은 물건이 있음을 봄과 동시에 그것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엄청 큰 소리와 함께 뒷바퀴에 문제가 생겼음을 계기판의 도움이 없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즉시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차선을 변경해서 갓길에 멈추려고 했지만 양보해주지않고 주행차로로 추월해서 지나가는 차량들 때문에 1~2킬로미터쯤 더 가서야 가까스로 갓길에 멈출 수 있었습니다. 내려서 살펴보니 왼쪽 뒷바퀴 측면에 달걀만한 구멍이 나서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목적지는커녕 가장 가까운 시내까지도 3~40킬로미터를 더 가야 했는데 차는 더 이상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앞이 까마득해지며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고 스스로 예비 타이어로 교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갓길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가드레일에 바짝 붙이는 동안 아내는 100미터쯤 뒤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왔습니다. 차를 들어 올리기 위한 공구를 꺼내는 일부터 순조롭지 못해서 손이 작은 아내의 도움으로 20분쯤 걸려 간신히 꺼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밖의 기온은 영하 10도, 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쯤 되었으므로 일을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손발이 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주저앉은 바퀴 옆에 누워 잭을 밀어넣고 차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차 밑 공간이 너무나 협소해서 처음엔 정말 1밀리미터씩 들어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참을 끙끙거렸음에도 거의 움직임이 없는 모습에 아내와 아들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긴급구호요청을 하자고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서 차는 근처의 수리소로 견인되고 우리는 여관을 찾아 하룻밤을 묵어야 할 바에야 하는데 까지 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길바닥에 누워서 머리가 거의 차선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화물차들이 공포스러웠고 차체가 조금 들려 차 밑에 공간 생기자 일은 조금 수월해졌지만 잭을 받친 위치가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중간에 차 밑에 깔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습니다.
(사진은 타이어 교체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아내가 저 모르게 찍은 사진입니다. 아마 힘들게 일하는데 사진이나 찍는다는 타박을 들을까봐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도로쪽으로 엉덩이를 쭉 빼고 예비 타이어를 끼우고 있는 모습을 식별할 수 있을거에요. ㅎ)
30분쯤 걸려 겨우 겨우 펑크 난 바퀴를 뺄 수 있을 만큼 차체를 들어 올린 뒤 바퀴를 빼려 했을 때 꿈쩍도 하지 않는 너트를 보며 실패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미국에 있을 때도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져 예비 타이어로 교체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차체를 들어올리는 데까지만 성공하고 바퀴를 뺄 수가 없어 결국 전문 구호 서비스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구조하러 온 사람이 발로 공구를 밟아서 너트를 빼던 것이 생각나 공구가 빈약하긴 하지만 비슷하게 해보니 의외로 수월하게 바퀴를 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차체 밑에 달려있는 예비 타이어를 분리해야 하는데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차를 판 대리점의 딜러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추운 날씨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던 저와 아내의 전화기가 모두 꺼져버렸습니다. 말로 설명이 어려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딜러와 연락이 되어 타이어를 분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차를 구매할 당시 관련해서 설명을 들었지만 그리 주의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무튼 방법을 알고 나자 예비 타이어는 비교적 쉽게 분리할 수 있었습니다.
주행 중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너트를 꽉 죄라는 아내의 농담섞인 당부를 들으며 예비 타이어를 달고 나니 이제는 차체를 내려 차를 지탱하고 있던 잭을 빼낼 생각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더구나 예비 타이어는 직경이 10센티미터는 더 작은데… 그런데 나름 머리를 굴려 차에 있던 소화기를 예비 타이어가 바닥에 닿을 부분에 두고 차체를 내린 덕분에 고생을 좀 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차를 옮기고 보니 정상적으로 작동을 할지 우려가 될 만큼 소화기가 찌그러져 있더군요.)
드디어 거의 두 시간의 ‘사투’ 끝에 펑크 난 바퀴를 예비 타이어로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딜러는 예비 타이어로 교체하면 저속으로 주행하여 4~50킬로미터 안에 다시 정식 타이어로 교체하도록 권고했지만 목적지까지는 아직 200킬로미터가 남아있고 그 시간에 타이어를 교체할 데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처가에까지 가서 다음날 정비소를 찾아 교체하기로 하고 천천히 달렸습니다.
결국 열두 시가 넘어 처가에 도착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대한 짜증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차 바퀴를 교체하고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내의 격려와 찬사를 들으며, 또 아들이 바라보는 존경의 눈빛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바퀴가 터진 순간 뇌리를 스친 “하나님! 출발 전에 안전한 여정이 되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했잖아요!”라고 했던 원망, 아들 녀석이 바라던 대로 한 휴게소 앞에서 미리 쉬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후회, 그럼에도 평소 제 성격과 달리 타이어를 교체하는 내내 짜증과 분노를 잘 참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아들 앞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얻은 교육 효과, 전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더욱 암담한 조건에서도 성공했다는 성취감, 혹한의 날씨 때문에 온 몸이 얼어 나중에 삼각대를 가지러 갈 때 발에 아무런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추웠음에도 불빛을 비춰주며 도와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 등등
무엇보다 어려움을 기쁨으로, 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으로 바꿔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해피엔딩!
두 시간의 노고로 가족들의 존경심을 사셨으니 남는 장사를 하셨네요.^^
한국은 보통 보험회사에서 긴급출동 서비스 5회 무료로 제공하는데, 중국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