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그동안 이러한 이슈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오지는 않고, 소강상태에 이른 탓인지 저도 소재를 찾는 데 시간을 쓰다 못해 지치고 말았었습니다. 기말 시험이나 잘 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거죠. 아마 44회 바이블 핫캐스트를 보신 분들이라면 어떤 상황인지 아실 것입니다. 여러모로 시간을 끌다보니 어느샌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네요.
한 해의 시작과 동시에, 그동안 믿음을 변증하기 위해 마음을 들인 나날을 잠시 회상하면서, 진정 성경 신자로서 변증을 할 때 어떠한 자세를 취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글을 쓸까 합니다.
1. 지난날의 회상.
기독교 대안학교를 처음으로 다니게 된 중학교 3학년 때, 저는 학생들이 당시에 사용했었던 한영성경들을 보면서 영어성경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어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상태에서 처음으로 NIV라는 독극물(?)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지금은 아주 짱박아 놓고 쓰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서 얼마 안 되어 4-5월 즈음에 팜플렛을 통해 처음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면서, 말씀을 읊조리는 학교 안에서 별개의 미친놈으로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일이 다른 번역본들과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정말 컸다고 느끼고, 본문의 차이가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 나름 적성에 풀리지 않은 것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예 그리스어 성경을 사서(물론 TBS 출판사의 공인본문) 사전을 통해 번역을 하기까지 했었는데,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라는 결론을 끝끝내 도출하고, 흠정역 성경이 어느새 부턴가 저의 메인 성경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저 한 사람뿐이었기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저는 반동분자 그 자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마인드로 인해 학교에서 저를 심히 염려했습니다. 아무래도 말씀보존학회가 현재 장로교 내에서 이단으로 지목되어버린 전적이 있었던 터라, 당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저의 입장을 이단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목양실에 들러 무언가를 빌릴 때면 목사님께 늘상 원어 및 완전한 성경의 부재에 대해서 충고 아닌 충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현재에 있어 중요한 이슈이기에, 원어도 공부할 겸 히브리대학교를 가라고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후에 폴 채플 목사님을 뵙게 되었을 때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아주 질색하셨던 것을 생각하면 안 간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되건 킹제임스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저는 이후 학생들에게 성경충이란 괴상한 별명을 얻게 되었고, 때로는 이단이라고 놀려먹는 이들 때문에 힘들어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믿음에 근거한 바른 행동도 중요하다고 충고를 듣는 것은 맞는 말이니 별 신경 쓰일 리가 없었지만 말이죠.
제가 이러한 문제들을 자주 마주했던 이유와 이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었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이들과 함께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의미로 보면 제가 무방비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기에 저는 이것이 제게 있어 참 중요한 사항이었음을 깨닫고 작년부터 베다니 침례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동일한 믿음 안에서 자유롭게 신앙을 나눌 수 있었고, 제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형제님들을 통해 배우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30년 전의 있었던 일들을 듣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나무위키를 수정하는데 많은 유익이 되었습니다.
대안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이득이라고 보여지는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나아간 결과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운명을 걸고 선택한 길들은 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 변증에 있어 중요한 무기.
저는 그동안 선생님과 학생들을 상대로 제 믿음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믿음을 방어할 논리가 필요했고,
그 논리에 기반 하는 예시가 필요했으며,
모든 예시의 근본인 말씀에 대한 바른 인지가 필요했습니다.
이 믿음을 위한 싸움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늘상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리 아시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부족함이 없는 장비들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을 입으며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여 그것으로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 (에베소서 6장 13-17절)
온라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 것은, 각 장비들을 착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능력이나 기술이 미착용 상태일 때와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투구, 얼굴장식, 귀고리, 목걸이, 반지, 어깨 견장, 뱃지, 상의, 하의, 방패, 신발, 무기, 보조무기 등..... 사소해 보이는 아이템들조차도 캐릭터의 능력을 최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에 따라 상당한 가격이 매겨지기까지 하는데, 성경말씀에 제시된 아이템(?)들은 실제적인 영적 전투에 쓰여지니 감히 그 가치들을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지요.
여담이지만 아이템이 게임 스토리를 위해 큰 지장을 일으키는 류의 게임에서는 아이템이 실제 현금으로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보유하고 있고, 큰 투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으며, 어른아이 할 거 없이 돈 낭비를 하게 만드는 비효율적인 단점을 낳기까지 하는데, 이를 영상화 시켜서 돈을 벌지 않는 이상 실제적인 유익은 남아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는 그러한 류의 게임은 접은 상태입니다. 정신건강에 좋거든요. (아이템이 재정적으로나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는 게임은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험담에 근거한 것이기에 더더욱...)
주제로 다시 돌아가서, Searcher님께서는 설교를 통해서 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 정말 실용적인 말씀을 제시하셨습니다. 성령의 검, 그것은 우리가 앞서 나아가며 공격하는 도구이기에 올바른 사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 또한 설교를 통해 다시 일깨워지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데 있어 중요한 방어구인 방패에 대해서 강조를 할까 합니다.
3. 방패의 기능과 사용법.
가족끼리 놀러 가서 숙소에 머물렀을 때, TV를 키고 채널 좀 돌리다가 우연히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19금이라지만 제한 걸린 거 없는 걸 보니 별 탈 없었던 듯.) 거기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이집트 군대가 솔로몬의 군대를 향해 나아갈 때, 다시 돌아온 지혜를 통하여 솔로몬은 제 타이밍에 맞춰서 병사들이 은(아니면 쇠)으로 된 방패를 들게끔 명하여 햇빛을 그들에게 반사하여 시야를 가리게 했고, 시야가 가려진 채 병거를 타고 달리는 군사들은 둘 사이에 있는 절벽을 인지하지 못하고 결국 추락사(?)로 전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시가 좀 불건전하지만, 이처럼 방패는 여러모로 쓸 만한 도구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쓸 만한 것을 제시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우리를 보호하는 방패로서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여 그것으로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 (16)
의의 흉갑, 진리의 허리띠, 화평의 복음으로 된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무작정 달려나가는 것은 지나치게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킬레우스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킬레우스도 발에 있는 약점을 생각해서라도 무장해서 나갔는데 정작 그리스도인이 비무장한 채 불화살 맞고 뻗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믿음의 방패는 성경에서 언급했다시피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들을 끄는 방어 역할을 합니다.
사실 우리는 방패를 들어서 방어를 하기도 하지만, 좀 판타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개개인마다 배리어(방어막)를 깔고 들어갑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다음 구절들을 보면 알 것입니다.
그러나, 오 {주}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이시니이다. (시 3:3)
{주}여, 주께서 의로운 자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하듯 호의로 그를 감싸시리이다. (시 5:12)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내 백성이 잊을까 염려하나이다. 오 우리의 방패이신 [주]여, 주의 권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시 59:11)
때로는 우리도 공격받고 주춤할 때가 있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상 우리에게 주어지는 공격들은 주님의 권능에 의해 무력화 될 것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개인적인 방패를 가지기도 하지만, 이는 주님을 신뢰하는 데서 오기 때문에 위와 같은 말씀들도 동시에 영적인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방패를 사용하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 (잠 30:5)
믿음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 방패로서 믿음은 성령의 검인 말씀과 같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글을 쓸 때 실제적인 말씀을 인용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처럼 방패 하나만으로도 공격과 방어가 가능한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따라하지 마세요.’의 예시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애니메이션에서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방패로 찍어서 누르거나 휘둘러서 대상을 공격하는 일, 흔히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다’와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공격 무기들을 지닌 채로 하는 행동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방패로 공격을 막고 방패를 휘둘러서 그 세력을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검을 무조건 들어서 공격 자세를 취하기도 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고선 우리의 믿음에 있어 어떠한 방어도, 어떠한 변증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마치며..
그래서인지 저는 변증글을 쓸 때마다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웬만한 경우에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음을 지켜나갔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러지 못한 경우에도 인용 자료에서 성경이 인용되기도 했었죠.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다만 앞으로도 검과 방패를 동시에 지닌 채로 영적 전투에 임하는 제가 되어가길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변증의 목적을 상실하고 말 테니까요.
읽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도 제각각 다른 스케일로 영적 전투에 참여했을 테고 앞으로 2019년에도 그러할 것인데, 모두가 전신에 찰 것 다 차고(?) 검을 다루는 데 능함과 동시에 방패를 들어 사용하는 데 유능한 자가 되어 영적 전쟁에 참전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인사의 글이라기엔 약간 긴 듯 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