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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시각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저도 언젠가 신론과 로마서 강의를 각각 들었을 때 칼빈주의의 튤립 교리가 왜 성경적으로 오류가 있는지에 관해서 들은 바가 있지만, 침례교회사를 다룰 때는 루터나 츠빙글리만 직접적으로 나올 뿐, 칼빈과 침례교인에 대한 이런저런 디테일한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논란이 있었거나, 아님 직접적인 접점이 없었거나, 혹은 학부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는 의도였거나…….그랬을지도 모르죠.

 

 

 

성경 변증을 두고서 칼빈을 고찰해보니 이런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교리적 실책을 칼빈에게 뒤집어 씌워놓고 칼빈에 대한 간단한 신학적/역사적 평가조차 언급하지 않는 것은 실질적으로 종교개혁사에 대한 모독이 될뿐더러, 공인본문 계통의 성경을 쓰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번역 성경을 사용하는 역사적 의의를 놓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면 다른 이들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해야 하는 좋은 이유들을 제시하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죠.

 

 

교리적인 입장에서 칼빈을 대하는 자세와 별개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칼빈을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 객관적인 사실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쓰지만 어중간하게 생각해보았을 뿐, 진지하게 공부해 본 적 없는 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칼빈은 어떤 신약 본문을 사용했을까요? 리들(Jeffrey T. Riddle)의 논문과 힐즈(Edward Hills)의 책을 기반으로 이 주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빈이 살았던 시대의 신약 본문들

 

 

칼빈은 1509년에 태어나 1564년에 죽었으므로 1516-1560년까지의 공인본문 신약성경을 접할 수 있었고, 이전부터 계속 사용되어 온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나 여러 보존된 필사본들도 접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분명해집니다. 공인본문의 경우만 생각해 볼 때, 칼빈이 살던 때에 인쇄된 본문은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라틴어 신약성경과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라틴어 신약성경 이 둘로 한정됩니다. 물론 판 수까지 따지자면 개수가 꽤 되지만, 스테파누스의 본문이 에라스무스의 본문을 많이 반영했던 사실로 볼 때 본문 간의 큰 차이는 없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같은 계열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죠.

 

 

제임스 화이트 같이 킹제임스 성경과 공인본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공인본문이 우세했기 때문에,칼빈이 어쩔 수 없이 공인본문을 사용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을 내세웁니다만 이런 주장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 시대에도 파피루스나 필사본들은 존재했습니다. 더군다나 칼빈이 공인본문 신약성경만 봤다는 기록 또한 없기 때문에 제임스 화이트의 주장은 그저 그랬으면 좋겠네식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것이죠.

 

 

 

본문 비평이라는 시점에서의 칼빈

 

 

힐즈는 16세기 학자들이 명확하게 어떤 신약성경 본문 비평체계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현재 네슬/알란드, UBS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비평장치들은 18세기 때부터 확립되었기에 현재 사본/본문의 계열들을 분류하거나 다른 독법들을 분류하는 체계에 있어서는 현대의 원문비평이 더 뛰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원문비평의 방식보다 체계가 뛰어나지 않다는 이유로 종교개혁자들이 본문비평에 무지했다는 듯이 비판한다면 그것은 크게 착각하는 것입니다. 리들의 논문에서 나타났듯 칼빈은 현대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본문들에 관한 이슈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어떤 본문이 적절한지 신중하게 비교할 정도로 식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기본적으로 고수해야 했던 교리들에 대한 치밀함이 신약성경 본문을 비교하고연구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혀 있었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원문비평은 교리적인 요소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고, 잘못된 비평으로 점철이 된 비평본문의 위험성이 뚜렷한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정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각주에 들어있는 비평장치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은 다행히도 교리적 중요성에 따라 여러 논란이 되는 구절들을 별 탈 없이 잘 구분해서 성경 본문으로 인지했기 때문에 우리 성경 신자들이 그 부분만큼은 좋게 평가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이 사용하고 채택한 본문은?  

 

 

칼빈을 연구한 파커(F. H. L. Parker)는 칼빈이 초기에는 스테파누스의 계부 콜리나이우스가 인쇄한 신약 본문을 먼저 접했다고 합니다. 같은 프랑스 출신이었기에 아무래도 콜리나이우스의 본문을 접하는 게 더 쉬웠었죠. 그러나 그 본문은 공인본문과 빈번하게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칼빈이 성경 주석을 저술할 당시에는 이미 그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에라스무스와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라틴어 본문과 같이 공인본문 계통의 신약성경을 최우선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칼빈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논란이 되는 구절들에 관해서는 에라스무스보다도 더 큰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해당 본문들은 (없음)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분명 성경 기록이 맞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을 다루는 데 몇 실수가 있었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옳은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에라스무스를 수십 차례 비난하기까지 했었으니 칼빈의 확신은 분명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이렇습니다.

 

 

마태복음 6:13b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위 구절이 라틴어 본문들 및 라틴 벌게이트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개역개정판에도 고대 사본들을 핑계로 괄호로 표시했는데, 칼빈은 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이 이 구절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언급되는 것과 그러한 기도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기독교 강요 3권에서도 이렇게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그렇게 담대하게 구하며 또한 구하는 바를 얻을 것을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다. 라틴어 역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여기서 그 본문을 삭제하지 않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 ,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6:13)가 그것이다. 고요하고도 견고한 우리의 믿음과 확신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502p.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이후 아멘으로 끝나는 것을 하나님의 약속이 견고하다는 것으로 보았던 칼빈이었기에 해당 구절이 빠진 라틴어 본문들을 주저 없이 거부했던 것입니다. 왈덴시안이 주기도문을 중요시했던 것 같이, 칼빈도 그 뒤를 이어 주기도문이라는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매우 가치 있게 여겼고,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라는 주제를 두고 주기도문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본문을 보는 통찰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매우 적절했습니다.

 

 

요한복음 7:53-8:11

 

 

간음 사건이 나오는 부분인데, 대부분의 원문비평학자들은 해당 구절들이 요한의 기록이 아니었다고 판단함으로써 그 본문을 해석하지 않거나 내 그래도 해설은 달아준다는 식의 태도를 보입니다. 칼빈은 이 때에도 수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이 여인의 간음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의심할 것도 없이 성경 본문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거듭된 의심이 있었지만 청교도 신학자 아더 핑크는 필사본을 뒤져가며 계속 진위여부를 논하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말함으로써 해당 본문이 진정 성경 기록이 맞다는 칼빈의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16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셨음을 드러내는 구절에서 칼빈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키 포인트는 그리스도론이었습니다. 옛날부터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두고 대판 싸워왔기 때문에 수많은 이단 종파들의 삐뚤어진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던 구절인 디모데전서 3:16은 해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God’이 아니라 ‘He’라고 판단하고 읽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확고한 성경적 교리를 지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또다시 라틴 벌게이트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당연하게도 주저 없이 하나님께서육체 안에 나타나셨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요한일서 5:7-8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어딜 가도 빼놓을 수 없는 논란의 구절입니다. 예전 변증글에서 매튜 헨리, 투레티누스 등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삼위일체가 담긴 요일 5:7을 전적으로 지지했었다고 언급했는데, 칼빈 역시 이러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칼빈은 자신의 주석에서 위와 같이 읽어야 그 본문의 흐름이 더 잘 맞아떨어진다고 얘기했으며, 기독교강요 3권에서도 정확하게 본문을 인용했습니다.

 

하늘에 세 증인이 ,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있다고 말씀하듯이, 또한 땅에도 물과 피와 성령의 세 증인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일 5:7-8). 기독교강요 10p.  

 

 

그래서 리들은 칼빈이 요일 5:7의 하늘에서 증언하는 세 분이 정확히 언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자신이 삼위일체 신학을 지지하는 쪽에 섰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마치며

 

 

칼빈에 대한 침례교의 평가가 어찌하든지,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성경 신자들은 이 칼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칼빈이 논쟁이 되는 부분들을 잘 이해하고 뚜렷한 확신으로 올바른 본문을 취했기 때문에 청교도들이 제네바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을 각각 번역할 때 해당 구절들을 불신해서 괄호 치는 일 없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있는 그대로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 신자의 관점에서 칼빈주의가 드러내는 오점들은 성경으로 바로 분별해야 하겠지만, 여러 오류들을 가지고 마구잡이로 칼빈을 비판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도리어 킹제임스 성경과, 공인본문 계통의 타국어 역본들을 지지하는 이유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할 때 칼빈이라는 적절하고도 좋은 예시를 보여주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성경 신자일 테니까요.

 

 

[참고]

 

에드워드 힐즈, 킹제임스 성경 변호 (그리스도 예수안에, 2007)

 

존 칼빈, 기독교 강요 中권, 번역: 원광연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4)

 

Jeffrey T. Riddle. John Calvin and Text Criticism. “Puritan Reformed Journal” PRJ 9, 2 (2017): 128-146.

 

 

 

 

  • profile
    searcher 2020.06.13 14:56
    참 좋은 글입니다.
  • profile
    북경아재 2020.06.13 23:07
    제목보고 searcher님이 쓴 글일걸로 예상했는데... 이런...
  • profile
    다니엘모스 2020.06.14 08:49
    저라고 못 쓰겠습니까 ㅋㅋㅋㅋ
    이럴줄 알았으면 킹제임스 성경 변증 시리즈로 넣을 걸 그랬네요..ㅎ
  • profile
    히스기야 2020.06.14 09:12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대단하십니다 ! ^^
  • profile
    David 2020.06.19 08:59
    귀한 글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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