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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킹제임스 성경 변증글을 쓰기가 참 애매한 시기였습니다. 나름 소강상태에 들어서던 때였고, 평화로운 가운데 믿음 생활을 하고 복음 전도를 할 수 있었던 때라 괜히 무언가를 끄집어서 당장 변증하고 설명하기가 난처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시비 걸지 않는다, 이 정도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네요. 긍정적인 면에서는 하나님께서 평화로운 시기를 우리에게 제공하시는구나!” 싶으면서도,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리스도인 인생 제대로 게을러질 수가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안일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겠죠.

 

     올해도 정동수 목사님의 이단성이 대두되기는 했으나, 작년보다도 더 적극적인 대응과 여론의 긍정적인 반응 등으로 인해 좋은 분위기가 이어져서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4번째 변증글의 분량 이상으로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작년 총회 결의에서 나왔던 문장들을 다시 한 번 다루면서 교리적 분별이 배제된 채 편향된 발언들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인지하고 바른 입장을 재론하기 위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알아야 하는 사항들을 인용 출처를 많이 거론하면서 하나하나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비판과 분석의 이유는 우리의 믿음의 타당성을 거듭 확고하게 하기 위함임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1.    보존 섭리가 무시된 사본학적 관점 타파하기

     

     지난해 장로교 총회에서 언급한 내용을 약간 발췌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동수와 그의 교회에서는 킹제임스흠정역을 오류가 없는 완전한 성경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완전한 성경과 마귀가 부패한 불완전한 성경이라는 이분법적 성경관에 갇혀 있다. 정동수와 사랑침례교회 측의 주장은 많은 사본이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이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본이 완전한 것이 아닌데 사본을 근거로 번역한 킹제임스성경이 유일한 성경이고 오히려 원본과 같거나 더 완벽한 것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은 사본학적인 기본적 인식의 부족으로 보인다.      본론 中

 

     사본학적인 이슈를 먼저 거론하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할 수는 있어도 장로교 교리에 있어서 신앙고백서가 단 하나도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합신 총회의 경우, 다른 부류의 이단성 검증이 있었을 때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인용되어서 교리적 반박과 장로교에서 믿는 바를 간단하게나마 거론했었는데, 위 본론에서는 성경과 신조에 기반한 진술이 부족합니다. 장로교에 있어서 사본학적 비평이 신앙고백서보다도 우선이 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었기에 씁쓸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옵니다.

 

A.    사본 계통은 어찌 되든 두 가지

 

이들은 완전한 성경과 마귀가 부패한 불완전한 성경이라는 이분법적 성경관에 갇혀 있다

     

     제가 그동안 변증글을 쓸 때 제 의견만이 아닌 전문, 즉 권위자라 불려지는 자들의 의견을 교파 따질 것 없이 인용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 뿐만이겠습니까? 이러한 의견은 결코 사랑침례교회와 정동수 목사님의 단독적인 지식과 생각에서만 도출된 견해가 결코 아닙니다. 도널드 웨이트(D. A. Waite), 게일 리플링거(Gail Riplinger), 에드워드 힐즈(Edward Hills), 사본 비평학자 중에서는 커트 알란드도 포함해서 여러 전문인들이 시각적인 자료로서 제시한 증거에 기반하여 저런 의견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본들의 본문 지지도가 한영대역 성경에 수록되어 있는데, 결국 비평적인 입장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2가지입니다. 본문 지지 도표를 거짓이라고 주장해서 그 근거들을 제시하던지, 아니면 인정하실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시던지….. 다른 한 가지가 또 있다 하면 그것은 그저 침묵 말고는 없을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주어진 자료에서는 5500개 정도의 사본을 기준으로 측정되었기 때문에 꽤나 오래되기는 했으나, 비평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들은 결코 양적인 부분에서나 질적인 부분에서 킹제임스 성경 본문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사본 개수들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현재에 발견된 사본들이 총 5784개 정도 된다고 하니 이 진술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입니다.

 

B.    사본의 출처 구분하기

 

     성경 번역의 역사를 논할 때나 성경적 전환점을 논할 때나 종교개혁은 정말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정도의 사건만을 보게 된다면 피상적인 역사를 외우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가령 예시로, 어떤 사람이 좋은 레스토랑이나 뷔페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 했을 때, 우리는 맛있게 먹고 왔냐?”를 먼저 질문하기보다도, “뭐 먹고 왔냐?”라는 질문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혹여나 이 순서가 반대가 된다 해도 무엇을 먹었는지에 조금 더 초점이 가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번역에 있어서도 사본의 출처는 종교개혁 시대의 성경 번역을 전부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본의 출처를 바로 구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개혁과 성경 번역이 올바른 척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호하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교개혁이 진정 하나님께서 역사 개입을 하는 데 있어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역사대로라면 그게 옳은 접근이지 않겠습니까?

 

C.    시내 사본 / 바티칸 사본  - 알렉산드리아 본문 계열

 

     이 두 가지가 원문비평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신약 본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그룹이나 공인본문 원문성경을 지지하는 그룹에서나 이 세 본문들은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일반 신앙인들 입장에서 보더라도 반가톨릭적인 성향을 지니셨더라면 적어도 바티칸 사본은 어떤 이유에서든 걸러야 맞지만, 일단 전문가들이 분석한 내용들 또한 열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내 사본

 

     시내 사본은 주후 4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추정되고, 1844년에 티센도르프라는 학자에 의해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 책의 형식인 코덱스(Codex)로 된 문서로는 가장 오래되었다고 합니다만, 이 본문은 지금까지 와서도 많은 논란들을 가지고 있었고, 공인본문 진영의 학자들은 시내 사본을 두고 몇 가지 반박 불가능한 의견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데이빗 대니얼스 형제님이 2019년에 낸 책도 그렇고, 데이빗 소렌슨 박사님도 2017년에 이와 관련하여 오래되지도 않았고 최고도 아닌 것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논란이 되었던 부분들

 

     사실 시내 사본이 논란이 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티센도르프라는 학자 본인에게 학자로서나 기독교인으로서나 문제가 있었는데, 간단합니다. 정직함이 없었고, 속이는 데에 있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의 인품은 사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시내 사본 본문에서 그 문제가 공공연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시내 사본은 정경뿐만이 아니라 외경과 위경 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서상 기록된 시기가 동일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해서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만, 정작 위경 중 하나인 허마의 목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시내 사본에서 드러나는 문체가 헬레니즘 형태의 문체라고 분석이 되었는데, 주후 5세기까지의 기독교 문서에서는 저런 경우의 문체는 결코 없었다고 드러난 것입니다 (Sorenson, 173). 이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허마의 목자라는 본문 δε Μαξιμω ιδου θλιψσις ερχεται. 라는 부분이 있는데, 후대의 라틴 본문들은 공통적으로 Dices autem; Eccemagna tribulatio venit. 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그리스어 Μαξιμω (막시모) 라는 단어를 추적할 무언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개의 다른 라틴어 본문은 Maximo/Maxima라고 기술하지만, 본문이 시내 사본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진술을 해놓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티센도르프는 없는 그리스어 단어를 만들어냈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렌슨 박사님은 만일 막시모라는 단어가 본디 존재하는 그리스어 단어였다 할지라도 라틴어 magna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합니다 (Ibid, 174). 그리고 위조가 사실이라면 헬레니즘 형태의 문체가 시내 사본에서만 드러나는 또한 위조의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위경부터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신약 본문이라고 이런 문제가 없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가장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신실하고 가장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불의하니라. ( 16:10) 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드러났기 때문에 오죽했으면 럭크만 목사님 역시 바울서신 주석서 초반에 이렇게 말합니다.

 

5 현상: 모든 필사본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곳에서는 주석가나 번역자들이 어떤 헬라어 필사본에도 발견할 없는 새로운 헬라어를 하나 만들어낸다.........

 

     이런 반박 불가에 해당하는 증거로 인해 시내 사본은 4세기에 기록되었다는 일반적인 정의마저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위조지폐도 범죄로 간주되어 처벌되는 시대에, 사본학적 위조 논란은 검증의 필요를 요구하는 사항이 아닌가요? 올해 들어 버건 협회에서도 이를 주제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었고, 이에 따른 증거도 넉넉하고 타당한 상태입니다. 시내 사본이 19세기의 티센도르프에 의해 위조된 본문이라는 의견은, 학자로서나 성도로서의 속임수로 덧씌우면서 덕을 세우지 못한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말씀을 맡기지 않으신다는 성경 말씀이 사실임을 뒷받침한다고 있습니다 ( 8:8). 설령 시내 사본 위조설이 아닌 4세기 기록이 맞다 하더라도 단독적으로 헬레니즘 문헌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수도 있습니다.

 

바티칸 사본

 

     바티칸 사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콘스탄틴의 명령 하에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 이집트에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명확한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1475년에 바티칸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그 사본의 참조 번호는 1209였습니다 (Ibid, 131). 이후에는 나폴레옹이 1809년에 탈취하고 6년 후인 1815년에 바티칸에 도로 갖다 놓았으며, 1828-1838년도 사이에는 로마 가톨릭의 추기경 안젤로 마이가 이를 팩시밀리 판으로 복사하기도 했었습니다.

 

     적어도 4세기까지는 사본들이 그리스어 대문자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사본들은 대문자 사본으로 불려지는데, 이 때 사본이 전부 대문자로 기록되었다는 대전제가 늘 기본입니다. 이후 9-10세기에 와서야 소문자로 사본들이 기록되는데, 이는 소문자 사본이라고 부릅니다. 바티칸 사본이 4세기경에 기록되었다는 일반적 추정 혹 사실은 곧 바티칸 사본 전체가 대문자로 기록된 사본이라는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정작 분석된 바로는, 창세기의 대략 처음 반은 소문자로, 대략 나중 반은 대문자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Ibid, 136). 신약도 마찬가지로 끝 부분이 소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두드러진 논란으로 사본 전체에 있어 정경과 외경 할 것 없이, 문헌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중대한 부분입니다. 바티칸 사본이 대문자 사본으로 판명이 나려면 전체가 대문자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전제가 깔려 있으나, 정작 소문자가 확인되었으니 그 사본은 이도 저도 아닌 부류에 속하게 되고 맙니다.

 

     몇몇 부분들은 사용된 잉크를 분석해 보니 인도에서 생산된 잉크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드러나는데, 이는 현대의 필사자가 기록에 개입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사본 역시 4세기에 기록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Ibid, 141).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바티칸 사본에는 목회서신에 해당하는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및개인서신인 빌레몬서가 아예 빠져있고, 히브리서는 9 15절부터 빠져있습니다. 사본의 경우, 끝부분이 소실되거나 분실되는 것은 여러 이유로 인해 가능성 있는 일로 볼 수 있으나, 책 중간이나 특정 부분의 본문이 전체적으로 없는 것은 이래저래 문제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작 교부들에 의해 반대경 (몇 교부들에 의해 성경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책들)이라고 일컬어지는 베드로후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서신, 유다서, 계시록 중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는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부분적 포함). 그렇기 때문에 유독 목회서신과 개인서신에 해당하는 총 4권의 책이 빠져 있는 것은 큰 의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평학자 커트 알란드는 바티칸 사본에 바울서신 4권이 없다는 이유로 목회서신은 정경으로 포함시키기엔 확실성이 없다고까지 하는 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Ibid, 143).

 

     만약 사본에 대해서 논한다 하였을 때, 커트 알란드의 궤변(목회서신과 빌레몬서의 정경성 부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 2항은 성경 66권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함으로써,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이 네 권을 정경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2- 성경,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 아래 현재 구약과 신약의 이 모든 책들이 다 포함되었으니,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중략)......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이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given by inspiration of God)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다.                                           [신원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3가지 성경 핵심교리, 22]

 

     장로교 신조에 의하면 의도적으로 목회서신이 빠진 바티칸 사본과 이에 기반한 커트 알란드의 의견을 배격해야 정상입니다. 사본학의 이름으로 신조를 저버리고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 애초부터 정상적인 태도는 아니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어찌되건 바티칸 사본은 사본 분류에 있어서나 없는 본문들을 고려해볼 때 결코 신뢰할 수 있는 사본이 아닙니다.

 

시내 사본 vs. 바티칸 사본

 

     그렇다고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많은 공통점을 이루고 있느냐? 똑같이 변개된 본문이기는 하나, 애초에 시내 사본은 제멋대로인 문체로 기록되었고, 바티칸 사본은 소문자 필사와 대문자 필사가 오가는 본문인데, 어떻게 둘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탓에 본문의 차이도 심각한 나머지 호스키어는 복음서에서만 둘의 본문 차이가 3036가지나 된다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656 / 마가복음 567 / 누가복음 791 / 요한복음 1022]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비평학자들의 손에 들려져서 그리스어 비평 본문으로 편집되는 이유는(Nestle-Aland/UBS) 두 사본 자체가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원본과 대부분 맞아떨어지고 더 정확할 것이라는 의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오래된 것들의 복음서부터 3036개의 오류가 발생했는데, 이렇다 보니 1881년에 Critical Text를 만들어 내서 출간했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두 사본을 기준으로 그리스어 본문을 편집했으나, 결국은 바티칸 사본이 90%의 비중을, 그리고 시내 사본은 10%도 될까 말까 하는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D.    공인본문 하나님의 역사와 보존된 본문

 

     «그렇다면 공인본문이라 알려진 사본들은 어떠하냐라고 말 할 법도 한데, 앞서 언급한 두 본문이 제대로 사용된 역사적 사례가 매우 부족한 반면, 공인본문이라 불려지는 사본 계통은 교회에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인 흔적들이 잘 드러나고, 본문 자체가 우수성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잘 드러난 바 있습니다. 문헌적 가치에서부터 논란이 불거졌던 두 본문에 비해 가치가 있는 증거들을 축약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공인본문의 보존과 교회사의 연속성.

 

     성도들을 통해서 공통된 구원이 전달되어왔고 ( 3) 성경 기록들 또한 보존되어서 지금 우리 손에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론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믿음이 대전제라는 하에, 데이빗 소렌슨 (David Sorenson)이 늘 언급하는 주제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왈도파라 불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2세기를 시작으로 16세기까지 성경 기록을 거듭 보존해왔고, 그것이 칼빈의 뒤를 이은 종교개혁자인 테오도르 베자 (Beza)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당시의 교회사적인 정황을 파악해야만 합니다.

1세기 후반에 북 이탈리아 지역에 속하는 피에몬트에 이탈리아 교회들이 존재했습니다. 이후 12세기와 와서야 피터 왈도의 열정적인 전도 사역을 시점으로 대두되었을 시기에 로마 가톨릭에 의해 왈도의 이름을 본따서 보두아 (Vaudois), 왈덴시스 (Waldenses) / 왈덴시안 (Waldensian)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는데, 알프스 쪽에 있으며 이탈리아, 프랑스 및 스위스에 걸터 있는 이 교회들은 교파의 형태나 로마 가톨릭과 같은 수직적인 직분 체제를 결코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침례를 주었고, 성경이 말씀하는 명령들을 실행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경을 소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종교개혁자들 또한 증언하는 바로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1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그 가르침을 바로 전수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또한 2세기 당시에 번역된 구 라틴어 성경과 이탈라 성경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리스어 성경 또한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17세기 왈덴시안 역사가인 레거 (Leger)는 그에게 있어 선대의 믿음의 소유자인 왈덴시안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수 세기에 이르러 거듭 보존해왔고, 심지어는 극히 오래된 양피지 사본도 소유하고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Leger, 164).

 

     역사적인 증언들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19세기에 왈덴시스가 모여있는 피에몬트에 방문하여 왈덴시스를 연구했던 윌리엄 스티븐 길리도 동일하게 언급하는 바가 있었는데, 왈덴시스가 세운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라틴어 문법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Gilly, 313). 그들이 라틴어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이들이 이러한 교육을 수 세기에 걸쳐 존속시킬 이유는 없는데요, 이는 오히려 언어 공부의 목적이 말씀 보존을 위한 역사적 섭리라는 것을 밝히 드러냅니다. 요즘에도 어느 교파 할 것 없이 원문 성경을 분석한다거나 주해를 목적으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듯이, 이들은 소유한 성경을 읽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라틴어 공부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실제로 구 라틴어 및 이탈라 성경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또한 그리스어 수업도 이들에게 존재했고 (Gilly, 321), 덧붙여서 와일리는 그들이 그리스어에 능통했다고 함으로써 그리스어 본문들도 왈덴시스의 수중에서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들이 결국 1532, 샨포란 회의에서 일주일을 논한 결과, 종교개혁에 협조하기로 하고, 보존한 사본들과 번역본을 종교개혁자들에게 전해주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이에 맞춰 칼빈의 사촌형인 왈덴시안 목사 올리베땅이 1535년에 프랑스어 성경을 번역했고, 이후 종교개혁자들이 제네바에 터를 잡을 때, 왈도파에서 전해 준 성경과 종교개혁자이자 인쇄공인 로버트 스테파누스의 본문을 기반으로 1560년에 제네바 영어 성경과 제네바 프랑스어 성경이 인쇄됩니다 (그저 프랑스어 제네바 성경은 현재 몇 권 없을 뿐, 실제로 당시에 인쇄되어 출판된 것을 확실합니다).

   

     오랜 역사가 중 에드가는 칼빈의 계승자인 베자가 제네바에서 그리스어/라틴어 신약성경을 출간하려고 힘쓸 때에 왈덴시스가 보존한 그리스어 본문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베자가 직접적으로 그들의 본문을 사용했다는 언급은 없지만, 이미 이들이 종교개혁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매우 가능성 있는 의견으로 보고 있습니다. 베자가 본문 편집과 출간을 위해 사용한 사본은 25개였고, 그 중 16개가 스테파누스에게 빌린 것이었습니다 (Robinson, 9). 그렇다면 9개의 본문 출처가 왈덴시안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온 것이라는 유력한데, 왜냐하면 그는 왈덴시스라는 북 이탈리아의 교회의 순수성과 보존된 그리스어 신약 본문으로 인해 놀랐으며 심지어는 이들에 대해 글로 써서 순수한 교회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송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Gass, 151).

 

     베자와 왈덴시안 그리스도인들이 전수한 사본과의 연관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1세기 말 혹 2세기에 주어진 그리스어 본문과 라틴어/이탈리아 본문이 왈덴시안 그리스도인 등 이탈리아 산지의 교회들에서 사용되고 교육과 믿음의 계승을 통해 16세기에 이르러서까지 일관되게 보존되었고, 그것이 베자의 신약성경 본문에 반영된 것이라면, 공인본문의 직접적인 계보가 북이탈리아 교회에 있었던 왈덴시스로부터 킹제임스 성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Sorenson, Touch Not the Unclean Thing, 260).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과 그들이 속한 교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셨고, 그것이 공인본문이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킹제임스 성경은 공인본문에서 비롯된 성경이기에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완전한 말씀이라고 불려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고로, 공인본문을 받아들이고, 그 본문에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러한 교회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알려지지 않았을 뿐, 성경 보존이라는 과정과 결과 속에는 늘 순수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책임을 가지고 성경 기록을 보존하고, 언어를 가르치고, 성경과 믿음과 교육을 후대에 전수하고, 다음 세대가 이를 수용하는 절차가 존재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본문 수용-편집 (번역)-인쇄-배포 라는 과정이 더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믿음을 세울 수 있도록 여러가지로 수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겪은 최종적인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성경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을 통해 성경 기록을 보존하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고, 종교개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정확하게 우리 손에 주시려 했던 사실과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 32:4). 그런고로 사본학에 매여있는 어느 의견들보다도 킹제임스 성경과 그 한글 본문인 킹제임스 흠정역을 더더욱 사용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이 말하는 사본론

 

     이제는 사본과 본문의 보존이라는 관점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적인 증거도 중요하지만, 이 외적 증거들은 성경이라는 내적 증거가 표출되고 실현된 결과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듯 성경으로 돌아가하나님께서 사본이라는 주제를 두고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본이 완전한 것이 아닌데….” [본문 中]

 

     일단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한편으로 틀린 말입니다. 원본만 영감받았으니 사본은 완전성이 결여된다는 발언을 계속 언급해서 유익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특히 레위 지파에게 명령한 사명이 사본학적 비평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그는 자기를 위해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하여

                                                                                                                                                       ( 17:18)

 

     하나님께서는 왕이 세워질 것까지 미리 알고 계시는( 2:23) 분이시기에, 그러한 일이 실현되었을 때에 왕이 올바른 척도로 통치할 수 있도록 레위 지파를 통하여서 율법을 읽게 하셨습니다. 사본의 불완전성을 거듭 강조하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구약 성경은 율법만 해도 1400년 이후에 기록된 사본인데, 비평학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들은 사본론적인 이유로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 4:16-20). 만일 이런 논리를 적용한다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으로 드러난 권능의 출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을 필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존하시겠다고 보장하신 것이고, 이러한 신뢰를 성경을 대할 때의 대전제로 삼으라는 명령을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기록된 율법부터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본학적 비판론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지 못하는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만 할 뿐입니다.

 

예레미야 / 바룩의 기록 작업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사년에 {}로부터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로부터 곧 요시야 시대로부터 이 날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민족들을 향하여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 안에 기록하라. 혹시 유다의 집이 내가 그들에게 행하려고 작정하는 모든 재앙에 대하여 듣고 그들이 각각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들의 불법과 그들의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그분의 모든 말씀을 그의 입에서 받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그때에 바룩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자기 입으로 이 모든 말씀을 소리 내어 말하므로 내가 잉크로 이 책에 그것들을 기록하였노라, 하니 ( 36:1-4, 18)

 

     예레미야와 바룩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적 사본론에서 큰 증거가 되는데, 지금 알고 있는 예레미야서라는 책은 결코 원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바룩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필사하라 명령하셨고, 바룩은 잉크로 종이에 그 말씀들을 기록했습니다. 이게 원본입니다. 그리고 여후디가 유다 왕 여호야김 앞에서 원본을 가져다가 낭독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에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그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왕과 왕 곁에 서 있던 모든 통치자들의 귀에 그것을 낭독하니라. 이제 왕은 구월에 겨울 집에 앉아 있고 왕 앞에는 불타는 화로에 불이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했을 때에 그가 펜 칼로 그것을 찢어 화로 위의 불에 던져서 마침내 그 두루마리 전부를 화로 위의 불에서 소멸시켰더라. ( 36:21-23)

 

     그렇게 원본은 불 타 없어졌고, 하나님께서는 이후 예레미야에게 주의 말씀을 다시 필사할 것을 명령합니다. 거기에 더해 여호야김의 죄를 짚으시며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십니다. 그래서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서기관 바룩이 와서 왕이 태워먹은 본문을 다시 기록하고 여호야김을 심판하시겠다는 선포 및 그와 같은 많은 말씀들 역시 기록하였습니다.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니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이 불에 태운 그 책의 모든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서 받아 그 안에 기록하고 그것들 외에도 그와 같은 말씀들을 거기에 많이 더하였더라. ( 36:32)

 

     그렇게 사본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이 영원하다고 선포하셨고 ( 40:8), 자신의 계획이 영원히 선다고 하셨기 때문에 ( 33:11) 말씀이 보존되도록 역사 속에서 계속 개입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역사적 개입을 성경 자체를 통하여서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구약도 바르게 기록되어 회당마다 배치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선포한 말씀이 헛된 것이 됨.), 신약 또한 동일한 하나님의 보존 섭리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 위에 세우신 교회를 통해 ( 16:18) 보존되게 하셨습니다.

 

     교회 시대에, 성도들의 수가 나날이 늘어가는 만큼 ( 2:41, 47) 성경 기록이 많이 필사되는 것은 필수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리고 같은 믿음을 소유한 이상 그들의 사본들은 항상 일관성을 띄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계열이 현재의 공인본문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많은 사본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이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본문 中]

 

     법과 관련되어 종사하는 사람들은 범죄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목격자나 증인을 통해서 사건과 사고의 진위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공통된 증언을 통해서 신뢰성을 확보하기까지 합니다. 이 당연한 원리는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는 때에 한 증인이 일어나서 어떤 불법이나 죄에 대해 그 사람을 대적하지 말며 두 증인의 입의 증언으로나 세 증인의 입의 증언으로 그 문제를 확정할 것이니라. ( 19:15)

 

     소수의견 존중이라는 말이 나을 수야 있겠지만, 이것은 비평 본문의 수적 열등을 어떻게든 보완하려는 수단 아닙니까? 사역자와 성도들은 신뢰도를 잃은 본문을 언제까지고 붙들 시간이 없습니다. 걸러야 할 것은 걸러버리고 옳은 본문으로 바른 신앙을 향해 가야 하는 성도들의 발목을 언제까지 붙잡을 생각입니까?

 

     애초에 로마 가톨릭처럼 공통된 거짓말들을 사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오셔서( 1:14-18 딤전 3:16) 나의 죄를 제거하시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이심을 믿는 자들의 공통된 믿음을 지키는 데 있어서 다수가 증언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고 타당합니다. 그리고 그 공통된 믿음을 지킨 다수의 손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필사하게끔 하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존하실 것인지 말씀하셨고 ( 12:6-7, 24:35), 자신의 성도들에게 보존의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 3:2, 22:7). [Michael Lester, Theology 1 Lecture .] 어찌되건, 많은 사본들이 동일한 독법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라야 합니다.

 

      총회 내 본론에서 하나 더 부족한 포인트가 있는데, 많은 사본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한 것도 맞지만, 반대로 킹제임스 성경이 동일한 본문에서 나온 많은 사본들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이전부터, 그 많은 사본들을 반영한 성경으로는 틴데일 (1534), 커버데일 (1535), 매튜 (1537), 그레이트(1540), 제네바 (1560-1599), 비숍 성경 (1568-1606)이 있었고, 다른 언어로는 올리베땅 프랑스어 성경 (1535), 레이나 발레라 스페인어 성경 (1602)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마련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고전 12:31, 11:40). 본문의 내적인 우수성과 외적인 우수성으로 인해, 킹제임스 성경은 문학적으로 다듬어졌고, 단순하며, 순수하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문학비평가 멘켄의 찬사를 받기도 합니다 (H. L. Mencken). 심지어 멘켄은 킹제임스 성경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나 가톨릭의 라틴어 벌게이트나 칠십인역보다도 압도적으로 더 좋은 성경이라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이를 고려하면 정동수 목사님의 발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합당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마치며

 

     성경론 하나만을 다루는데도 여러 가지의 영역을 관찰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과 주장을 많이 늘어놓기는 했지만 이걸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사본학이라는 이슈가 어느 교파에서든 이단 사유의 주된 핵심이 되기에는 상당히 애매한 편입니다, 그렇다고 성경 신자들이 이 주제를 간략하게 다루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요. 성경의 사례들을 제시하되, 외적인 증거들을 충분히 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영역에서의 말씀의 보존 섭리는 이황로 교수님께서 기고를 통해 잘 다루셨는데, 저는 그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리라 믿고 의지하는 데서 부족함이 없게 되기를 바라고, 학자들 또한 믿음이라는 초점에서 사본들을 대함으로써 학술적인 논제로 인한 불신으로 우리의 믿음과 충돌하는 현상이 더 이상 없기를 또한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튼 계속 열심히 공부해서, 독립침례교회가 믿는 바를 분명하게 진술하고, 결코 부족하지 않는 증거들을 바로 제시하는 변증가로서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용

 

Hoskier, H. C. Codex B and Its Allies. a Study and an Indictment. London: 1914, p.1. 

Gass, Mike. A Glorious Church Lancaster: Striving Together Publications, 2013.

Gilly, William. Stephen. Waldensian Researches, London: C. J. G & F. Rivington, 1831.

Robinson, J. Armitage. Texts and Studies: Contributions to Biblical and Patristic Literature II. Cambridge University Press: 1891, p9 

Sorenson, David H. Neither Oldest Nor Best. Duluth: Northstar Ministries, 2017.

Sorenson, David H. Touch Not the Unclean Thing. Duluth: Northstar Ministries, 2001.

신원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3가지 성경 핵심교리. 서울: 디다스코, 2018.

 

 

  • profile
    plan-B 2019.12.04 14:55
    제목에 '간략한'이라는 말은 낚시 같기도 하지만, 흠정역 꿈나무 다니엘모스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을 보니 매우 반갑고 흐뭇합니다. 파이팅!!
  • profile
    David 2019.12.06 08:50
    나중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일단 좋은 글 ! 감사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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