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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읽었던 루마니아 목사 리차드 범브란트의 <하나님의 지하운동> 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지옥에서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만났다. 그곳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고 거기에는 공산주의 지옥, 자본주의 지옥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생전에는 서로의 다른 이념 때문에 험악하게 싸웠지만 이 중요한 결정 앞에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마침내 공산주의자가 말했다. 

"동무, 공산주의 지옥으로 갑시다. 왜냐하면 그곳에 석탄이 있다면 라이터가 없을 것이고 혹 그 둘이 다 있어도 용광로가 고장일 것이요." 

 

 

최근에 어떤 계기로 이슬람이 생각하는 천국 혹은 낙원(파라다이스)과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그리는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우선 이슬람 천국과 기독교 천국 (그들이 그리는 )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슬람 교도들은 지옥과 천국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있다. 

가령 지옥에도 여러 층이 있는데 그중에는 특별히 기독교인들이 가는 지옥이 있다는 식이다. 

천국도 그들의 출신성분이 반영되어 (이 종교는 물이 귀한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천국은 가도 가도 물만 있다고 한다. 

필자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에 가서 이슬람 군주가 건설해 놓은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하고 느낀 점은 이 사람들은 정말 물에 한이 있는 민족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궁전 곳곳에 물이 있었다. 분수가 있고 물을 끌어 올리는 장치들이 있었다. 

테러리스트가 이슬람의 적, 주로 미국놈들을 죽이고 순교하면 바로 낙원에 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낙원에는 미스 아랍 출신급의 미모를 가진 미녀들 72명이 이 순교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 미녀들 모두는 숫처녀들이다. 

하루에 한 사람의 미녀를 취하여 다시 처음 여자로 72일 후에 돌아오면 이 순교자(테러리스트)가 상대했던 여인은 알라신의 은총으로 다시 숫처녀가 되어 이 순교자를 기다린다. 

숫자는 너무 황당해서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알라신이 순교자에게 수여하는 혜택은 -적어도 우리나라 정부가 독립유공자에게 제공하는 것과는 비교 불가이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매 3년마다인지 5년마다인지, 알라신은 친절하게도 이 미녀들과 더 즐길 수 있도록 정력을 배가시켜 주신단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녀들과 지치지 않고 즐기는 곳이 그들의 천국이다. 

참 친절한 신이다. 그리스 신들 중에는 실업자가 없고 무엇이든 하나씩 맡고 있는 것처럼 (심지어 분실물을 담당하는 신도 있다) 알라신은 내 의견으로는 포르노 업계를 보호하는 신이나 하다못해 성인용품점 담당 신으로 일하도록 이 지면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순교자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일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에 대해서 코란의 해석을 담당하는 이맘이라 불리는 이들은 (기독교로 말하면 성경교사나 목사, 힌두교 식으로 말하자면 구루 정도 되는 사람들이다) 친절하게 깨알 설명을 해준다. 

72명의 처녀란 꼭 여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참 엄청난 친절이고 기발한 발명이다. 

하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처녀( virgin)이라는 단어가 그곳에서는 처녀가 아닌 동정인 남성으로 등장하기도 하니 이슬람의 해석에 대해서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이 아줌마나 아가씨 출신 테러범은 아마 허리에 폭탄을 차고 진주성의 논개처럼 미국놈들을 산산이 날려 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죽어서 바로 눈을 뜨면 72명의 훈남들이(72명의 이승기가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단다. 

필자는 왜 이슬람인들이 그렇게 처녀성에 집착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취향이니 무슨 상관이랴마는 아무튼 알라신은 거룩하다기 보다는 인간의 끈적끈적한 배설의 욕구를 영원히 보장해주는, 국민들 복지에 엄청 신경을 쓰는 신인가보다. 

그곳의 복지에 대해서 과연 아줌마 순교자나 아가씨 순교자들이 매일 밤마다 남자를 바꾸는 것을 다 그렇게 좋아할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까 그 총각이나 유부남 순교자가 파라다이스에 가서 영원히 그렇게 즐길 때 이 72명의 처녀들도 그렇게 이 남자처럼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처녀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건 무슨 이슬람식 정신대도 아니고 말이다. 

이들의 인격에 대해서는 이슬람은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초점은 이 순교자가 영원히 즐기는 것에만 있다. 그렇다면 이들 72명의 처녀는 72명의 인격체가 아니라 요즘 말하는 sex toy(섹스 인형) 정도 된다고 봐야겠다. 

이슬람의 유일신 알라는 필자의 견해로는 약간 도덕 수업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공자나 맹자를 과외선생으로 붙여 주어야겠다. 방과 후 수업 교사로 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동화의 차원에서 접근한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는 사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엄청 야한 성인들을 위한 이야기다. 

필자는 우연히 독일 서점에서 아주 두꺼운 특별판 아라비아나이트를 -삽화가 곁들여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엄청 야하고, 잔인하고 , 적나라한 그런 이야기였다. 

요사이로 말하면 미드 왕좌의 게임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이 순교자들에 한 가지 더 추가되는 것은 이 순교자의 직계 가족은 지상에서 무슨 죄를 지었던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한다. 

가족들에게까지 특전이 돌아가니 순교자가 된다는 것은 이익이 쏠쏠한 일이다. 

 

서두가 너무 장황했다.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슬람이 그리는 천국은 이렇게 구체적인데 반하여 기독교인들의 천국은 너무나 썰렁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릴 수 없는 천국을, 혹은 그려도 썰렁하기만한 천국을 사모하고 그것을 위해서 현재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천국에 우리를 보내시기 위해 우리 맏형님 예수님은 그리 애를 써셨는데 이곳이 너무 썰렁해서 기독교인들은 그곳에 그리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가 대략 그리는 천국은 어떤 곳인가?

포동포동한 아기 천사들이 솜사탕같은 구름 위에 앉아 작은 하프를 들고 연주한다. 

날개도 앙증맞다. 이 작은 두 날개로 (쌍발 엔진) 통통한 몸을 민첩하게 이동하려면 마력 수가 잘 나와야겠다. 아마도 이탈리안 잡 같은 영화를 통해 유명세를 탄 BMW의 미니차의 엔진 급인가보다. 

 

 

갑자기 왜 피아노 치는 천사는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의문을 독일에서 성도들에게 한 번 표시했더니 피아노는 너무 무거워 아마 구름이 받쳐주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무튼 천국은 악기부터 너무 편중이 심하다. 

우리는 이 단순한 악기 반주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의 일원으로 영원을 보낸다. 가끔 거룩한 바울이 일어나 기도합시다하고 말한다. 

그다음은 베드로가 일어나 375장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을 신청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의 천국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수도원 같은 일상이 영원히 되풀이 되는 끝없이 지루한 곳이 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런 일은 사실 농담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되는 일인데 말한다. 

나는 차라리 지옥에 가고 싶어요 .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 영화배우, 운동선수들은 다 그곳에 있어요 하고 말한다. 

아무튼 우리가 시인해야 하는 것은 성경교사들, 목사들이 책임을 방기함으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은 천국을 제대로 상상하거나 그리지 못한다. 

그냥 공중에 연기처럼 둥둥 떠다니며 누구야 하고 부르면 메아리치듯 소리들이 울려서 돌아온다. 

의상도 통일되어서 흰색만 입는다. 

하늘나라는 온통 백의민족 천지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나사로는 어떠한가?

얼핏 보면 나사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주구장창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다. 혹시라도 무릎에 안겨 있음 아브라함의 다리가 너무 저릴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내가 독일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독일인들의 (평균적인 독일인을 말한다) 상상력 빈곤이었다. 

언어를 위해서 텔레비젼에서 방영되는 독일 드라마를 보려고 해도 너무 지루해서 참고 보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상상력이 빈곤한 것은 독일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적어도 천년왕국과 천국에 대해서는 도진개진이다. 

그래서 급기야 교황은 천국과 지옥은 어떤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장소라고 말해 버렸다. 

회사에서나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마음이 괴로우면 그것이 지옥이고, 즐겁게 긍정적으로 삶을 살면 그게 천국이란다. 

이런 호랑이 물어갈 .... 그 뒤에 말은 혹 가톨릭 신자가 볼까봐 생략한다. 

바울과 베드로는 가까운 곳에서 먹구름이 일어나 몰려오는 것과 같은 불안한 시대를 살았다. 

그들에게 기독교는 오늘날처럼 악세사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요사이 돌팔이 목사들이 하는 것처럼 긍정적 사고방식, 긍정의 에너지를 내가 방송국이 되어 쏘아 올리면 다시 돌아온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휴거와 천년왕국, 천국을 말하면서 이 모든 것으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이곳이 정말 우리의 복된 소망이고 자주 이 사실로 내가 위로받고 남을 위로하려면 성경에 근거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서두에 이슬람의 황당무계한 파라다이스를 기운을 소진하며 설명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한 천국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와 기대에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자 그럼 오늘 말이 나왔으니 성경이 말하는 천국에 대해서 일단 좀 생각해 보자. 

많은 것을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로서는 다 상상할 수 없다.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필자도 인정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단서를 제공하는 범위 안에서 상상을 해보고 머리 속에서 그려보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천국은 첫째 어떤 곳인가? 아님 천년왕국을 먼저 생각해 보자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 우리는 휴거와 부활 사건으로 영적인 몸을 입는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하는 노래처럼 

우리는 새 옷을 입고 천년왕국에 들어간다. 

눈깜짝할 사이에 변화를 입고 대기권과 둘째 하늘을 통과하여 세째 하늘에 도착한다. 

그전에 우리는 천사장의 호령소리와 나팔 소리를 듣는다. 

아마도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는 주님의 음성을 무덤 안에서 나사로만 들었던 것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만 이 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의 이름이 불려질 것이고 이리로 올라오라는 영광된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몸은 홀연히 변화되어 위로 날아 오른다. 

1차 집합 장소에서 집결한다. 공중에서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먼저 올라가고 그 뒤를 우리가 따른다. 공중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난다. 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과 조우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약간 형식적이지만, 다 온거지, 그럼 출발할까? Yes , sir 

필자의 경우에는 몸이 변화되어 1차 집결 장소로 가는 찰라의 순간에 많은 감정이 교차될 것 같다. 아마도 그때에도 지난 날을 후회하는 바보가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모든 것이 종결되는데 나는 왜 이런 삶을 살았지 하고 말이다. 

 

 

어쨌건 우리는 마치 영화 스타게이트의 장면처럼 둘째 하늘을 광속보다 더 빠른 속도로 통과해 북쪽으로 날아간다. 

순식간에 둘째 하늘을 가로질러 유리바다를 통과해 셋째 하늘에 이른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고 불리는 자리에 서게 된다. 

우리의 모든 것이 계산되고 상급이 주어지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혼인식이 있다.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큰 행사이다. 

바로 어린양의 혼인식이다. 

이 혼인식이 끝나면 우리는 아마 친정 나들이 하는 새댁처럼 지구로 다시 신혼여행을 떠난다. 

일부 러시아인과 폴란드인의 혼인잔치는 일주일동안 진행된다. 

느부갓네살의 잔치는 6개월간 지속되었고 

 

우리의 혼인 잔치는 1000년간 지속되며 우리 주님 (신랑)의 영화로움과 부를 모두가 보게 될 것이다. 

구약의 솔로몬의 한끼 식사는 그가 혼자 그렇게 많이 먹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주님의 왕국에서의 주님의 영화로우심을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필자와 함께 일단 천년왕국에서 시작해보자.

건강상의 이유로 많이 줄였지만 필자는 쥬라기 공원의 렉터처럼 육식 동물이다. 

 

 

고백컨데 선교회 있을 때 괴로웠던 것은 그곳의 수양회 식단이었다. 

지금도 점심 시간이면 줄을 서서 먹던 삶은 계란 하나가 올려진 국수가 생각난다. 

이런 내가 천년왕국에 들어가면 일단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이 노아 홍수전처럼 그렇게 장수하는 것은 좋은데, 자연이 회복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양들이 사자랑 뛰어놀고 있다. 

요기까지는 괜찮다. 

강아지를 몹시 좋아해서 우리 집 강아지는 나와 같은 우씨 성을 사용한다. 

그런 나이기에 아 사자를 개줄로 묶어서 (묶을 필요가 없겠다) 같이 산책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오늘은 천년왕국과 천국에서의 우리의 일상에 대해서 필자가 성경이 단서를 제공하는 범위 안에서 그려보는 것이니까 여기까지 와서 재미없는 분들은 나가셔도 필자는 너그럽게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사자도 풀을 맛나게 뜯어 먹고 있는데 나만 혼자 사자랑 산책 갔다와서 양을 잡아서 내가 중국에서 열심히 맛있게 먹었던 양꼬치를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어떤 독일 도서관이나 서점 앞에는 독일인들이 나의 지적질에 항변이라도 하듯 그들의 유머를 발휘해 책읽는 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고 붙여 놓기도 한다. 

천년왕국 입구에는 아마 육식 금지, 바베큐 파티 금지 이런 금어들이 적혀 있을 지 모르겠다. 

여기서 갑자기 좌절감이 밀려온다. 

육식이 없는 천년왕국이라니...

나는 아마도 천년 내내 전봇대가 없어서 계속 낑낑거렸다는 달나라 간 강아지마냥 그렇게 낑낑거리고 낙원을 불편해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온통 물인 곳이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이슬람 교도에겐 낙원이 될 수 있겠지만 돈까스도 없고 수제 햄버거도 없고 삼겹살도 없는 낙원이라니, 이건 악몽이다. 

나같은 불평분자를 위해 하나님은 마치 채식주의자 식당에서처럼 고기처럼 생기고 맛도 엇비슷한 콩으로 만든 쏘세지를 요리하도록 천사에게 지시를 내려 놓았을까?

하지만 사실 나는 채식주의자 식당에 우연히 가서 그런 쏘세지를 보고 속으로 채식주의자들을 엄청 욕했다. 먹고 싶으면 그냥 먹지 뭐 이렇게 모양이나 맛을 흉내내서 짝뚱을 먹는담 하는 그런 욕이었다. 

갑자기 그 식당 생각이 나면서 선교회 국수 같은 지루한 식단이 천년간 지속되지 않을지 불안해진다. 

나는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한 편으로는 고상을 떤다고 먹방을 몹시 비웃지만 (천박한 것들 하며) 모순되게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정말 살아온 배경이 다른 아내가 한 번씩 식사를 끝내고 아 한끼 때웠다 하면 이승복 어린이의 분노같은 것이 일어나는 사람이다. 맛없는 식사를 한끼 하고 나면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소중한 한끼가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버렸다는 생각에 화가 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천년왕국을 생각해도 첫째는 그곳에서 먹거리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날 생각했다. 

부활하신 주님은 떡과 꿀과 생선을 드셨다. 

꿀과 한국식 표현인 떡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40일간 계시는 동안 딱 한 번만 갈릴리에서의 식사 장면을 보여주지만 내게는 엄청 소망스러운 대목이다. 

아 천년왕국에서 육식은 기본적으로 안되지만 생선은 먹을 수 있겠구나 

이건 일부 채식주의자들이 육고기는 먹지 않으면서 생선이나 우유는 먹는 이치와 같다 하겠다. 

생선을 먹을 수 있다고 하니 그럼 생선회나 초밥같은 것은 가능하겠구나, 회를 쳐서 먹고 나서 남은 뼈를 추려 얼큰하게 매운탕을 먹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하고 필자는 소망을 가진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

천년 왕국이 끝나면 영원은 셋으로 나누어진다. 

요한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 

새 예루살렘은 차차 기회나는대로 더 말씀드리겠지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도시이다.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2400킬로미터 정도되는 정방형의 도시이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고 그것이 완성되면 돌아와 너희를 데려가겠다고 하셨다. 

새 땅 즉 새롭게 된 지구가 있고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지만 오늘 다룰 내용은 아니라 통과한다) 

그리고 새 하늘이 있다. 

다른 한 장소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불못이다. 

마귀와 그 천사들, 그리고 불순종하고 믿지 않은 이들이 영원을 보내게 될 형벌의 장소이다. 

 

 

천국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나는 나로서 영원히 존재한다. 

부자는 지옥에서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알아 보았다. 

베드로는 베드로로, 바울은 바울로 나는 나로 영원을 보내게 된다. 

나의 껍데기는 영적, 신령한 몸을 입었지만 나의 예전 육체가 없어져 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영적 몸, 신령한 몸으로 덧입는 것이다. 

새로운 몸이 아니라 변화된 몸이다. 

 

 

천국에서는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

중국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이 호떡집에 불난 양 영원히 너무 시끄러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바벨 후 수없이 많은 언어로 나누어진 우리 인류가 이제 모든 것이 회복된 세상에서 언어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성경이 명확히 우리에게 말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아무런 불편함없이 소통하게 될 것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에 덧붙여 필자가 어느 정도 확신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의 모국어를 여전히 (필자의 경우에는 한국어)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천국의 한자락을 커튼의 벌어진 곳을 통해 보면 

모든 언어와 족속이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천국에서도 자기 계발이란 것이 존재할까?

변화된 우리는 단번에 완전하게 되어 전혀 자기 계발이 필요하지 않은 최상, 최고의 상태에 진입하게 되어 더 이상 자기 계발 따위는 필요없게 될까?

선교회를 나오고 나서 나는 나의 무식함을 절감했다.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로 신학 서적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중간에 사는 것이 팍팍하고,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회의 때문에 자주 멈춰 서긴 했지만 

그래도 최근에 나는 꾸준히 책을 읽는다. 

목표는 하루에 두 권 읽기다. 

내가 목표한 만큼은 읽지 못하고 일주일에 평균 열권 정도를 읽는 것 같다. 

누가 왜 그리 책을 많이 읽냐고 물어보면 그냥 가볍게 

뇌색남이 되기 위함이라고 웃으며 넘긴다. 

뭐 책을 읽는 것이 당장 무슨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고 

누구 말마따나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책을 조금씩이라도 읽다보니 

사람을 만날 때 잡담하는 능력이 늘어났다.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어느 정도는 

대화를 할 수 있게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고수가 한 눈에 바둑판을 보는 것처럼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슨 자랑질이 목적이 아니라....

독서를 통한 자기 계발은 내게 있어서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사우디인들의 천국이 물로 가득한 것인 것처럼 

내가 그리는 천국은 대형 도서관이 옆에 존재하는 것이다. 

일단은 인류 역사 6천년 동안의 모든 세부적인 역사와 그들의 지혜, 경험들이 모든 언어로 

기록되어 책의 형식으로 보관된 그 옛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같은 그런 곳이 있으면 

시간도 많은데 일단은 한 20-30만년은 그 책들을 읽고 싶다. 

안철수나 토마스 에디슨 식으로 말하자면 책들이 아니라 도서관 하나를 통째로 삼키고 싶다.

코끼리 삼킨 보아뱀처럼 그렇게 머리가 볼록해져서 적어도 한 20만년은 보내고 싶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소원은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가 되는 것이었지만 

현재 이 세상에서 나의 소원은 혹시 내가 한국으로 역이민을 한다면 

대형 도서관이나 적어도 대형 서점 옆에 집을 얻고 싶다. 

그곳을 나의 개인 서재로 생각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그곳으로 출근하고 싶다. 

장황한 이야기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질문은 천국에서도 하릴 없이 길가면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스마트폰 보는 사람들같은 의인들과 나같은 활자 중독증세가 있는 이들이 아무런 추가 노력이나 자기 계발 없이 자동적으로 동일하게 업데이트가 될까 하는 것이다. 

더 좋은 부활이란 말을 미루어 보아 영원에서도 분명히 차별이 존재한다. 

그러나 필자의 질문은 그것이 이 세상의 삶에 의해서 한 번 결정되고 그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일단 그렇지 않다는 것에 한 표를 행사하고 싶다. 

에덴에서 죄를 짓기 전에 인류가 땀을 흘리며 저주 받은 땅을 경작하는 일은 없었지만 엄연히 노동은 존재했던 것처럼 취업난 속에 공무원 시험 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천국이 천국답기 위해서는 분명히 자기 계발이 존재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이 정도로 일단 마쳐야겠다. 자야해서... 시간 나는대로 마저 필자가 생각하는 천국의 모습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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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과 개혁(작성자)

 

위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요사이 강단에서는 천국이나 천년왕국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듣는 것은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물론 유투브에는 천국에 갔다 왔다는 간증이 언제나 넘칩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일들은 쓰레기 같은 헛소리일 뿐입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천국과 천년왕국을 소상하게 설명함으로, 때로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듣는 이들에게 경건한 두려움과 복된 소망을 주는 그런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참으로 드물다는 말입니다. 마음에서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막연한 곳은 사모할 수도 없고, 사모하지도 않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담보잡아 현재를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복된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 모든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넘쳐나는 위로는 세상에서 유행하는 학문인 심리학적인 접근이 대부분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고, 한국인 특유의 병문안 멘트인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수준입니다. 우리의 복된 소망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현재를 무시하고 비닐 하우스 같은 곳에 거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신문과 TV 도 보지 않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 혹은 현재에 발을 디디고 살고, 현실의 삶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눈은 미래 즉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된 소망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세가 없다면, 그래서 내세가 영원한 우리의 현세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 모든 이보다 가장 불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가 안 좋아서 임플란트를 해야하는데 금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오시면 건치 연예인을 능가하는 이를 새로이 갖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 미래가 불안한 청년기를 거쳐 이제 조금 나이가 먹어가며 몸이 예전같이 않음을 느낄 때, 조기 축구회에서 주로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가 될 때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시는 신호를 사방에서 듣습니다. 나이가 들어 조금씩 혹은 현저하게 낡아가는 육체의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오히려 소망을 갖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위협할 수도 없고 잡아 가둘 수도 없습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우리가 히브리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다 현재를 살며 영원한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집트의 모든 영화보다 광야에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충동적 선택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계산해 본 후 결정한 이성적 선택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부유했지만 평생을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이 지면을 들어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교리적인 것을 문제 삼아서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으므로..) 저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우주 계획을 엿봅니다. 그분의 계획은 웅장합니다. 모든 것이 퍼즐 조각이 맞추어져 가듯 마침내 완전한 그림이 되어 우리 눈 앞에 펼쳐집니다. 인간이 늘 꿈꾸었지만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유토피아, 영원한 파라다이스가 우리에게 영원히 펼쳐질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전에 제가 상급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드렸던 것을 잠깐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천년왕국도 그렇고 천국도 그렇고 그곳은 모든 이들이 평등한 곳은 아닙니다. 언젠가 누군가 딕형제님에게 상급에 대한 질문을 드렸을 때 딕형제님은 천년왕국에서는 상급의 차이가 있지만 천국은 그런 것이 없이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대답을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의 의견은 좀 다릅니다. 이 상급은 천년왕국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된다고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도 좁은 아파트 살면서 넓은 아파트 사는 사람을 부러워했는데 이러한 불평등의 상황이 영원히 펼쳐진다면 , 그래서 계속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불편해 한다면 그게 어떻게 천국이 될 수 있냐고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문을 가진 분들에게 이런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천년왕국과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사람들은 본성의 변화를 겪습니다. 물론 천년왕국에 옛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걸 제가 지금 설명하기에는 어렵지만, 이 정도는 다 아신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야겠습니다. 그럴찌라도 사단이 천년간 감금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악한 본성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치 석탄은 있는데 라이터가 없는 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이런 악한 본성이 이끄는데서 벗어나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많은 상급을 받은 사람을 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축하해주고 자신을 돌아보며, 이러한 차이를 기쁘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인정할 것입니다. 천국을 우리의 지금의 본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들어간다면, 혹은 사단이 감금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맞게 된다면 인간은 다시 그곳을 에덴을 파괴했던 아담과 하와처럼 그렇게 망쳐버릴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신경안정제를 사용하여 그들의 예민한 감각을 누그러뜨리는 것처럼, 그래서 약간은 멍한 상태의 평온을 갖는 것처럼 그런 상황이 천국에서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여전히 지닌채로 완벽한 상태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는 미국에는 말이 끌지 않는 마차가(표현하자면) 거리 거리에 돌아다닌다고 대지의 작가 펄벅이 말했을 때 (그녀는 막 포드에 의해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은 "헛소리 집어치워"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천국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차원이 완전히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을 지금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사실 그려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성에 무척 약하고 , 부지런히 이성을 만나고 헤어지기가 무섭게 이런 약간의 진공상태도 견디지 못해 또 다른 이성을 만나는 이들에게는 천국에 결혼 제도가 없다는 것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천사와 같이 된다고 하는 것이 영원한 지루함을 그들에게는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것들을 준비하십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예를 들어 그때가 되면 해가 일곱 배나 밝아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해가 일곱 배나 밝아지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밤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인간은 휴식을 필요로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밤이 되어야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불나방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홍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홍대를 다녔다는 말이 아니라 홍대 근처의 유흥거리에 익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천국이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일곱 배나 밝아진 세상에 최적화된 몸 , 영적인 몸을 갖게 됩니다. 모든 원소들이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녹아 내리고 재창조가 시작됩니다.원소들이 다시 배열됩니다. 우리는 더 많은 감각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체제가, 세상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세속작가들에 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의 생각과 특히 상상력은 얼마나 빈곤한지 모릅니다. 아침에 움직이면서 전철에서 스펄젼의 글을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조금 읽었습니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항상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살펴보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것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말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부려먹으려는 사람과 같다고 질책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탐구의 부재가 이런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릅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부활하신 후의 주님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은 벌려진 커튼 사이로 어떤 사물을 보는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영원한 현실인 영원을 살짝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주님은 물고기와 꿀과 빵을 드셨습니다. 그러나 제게 흥미로운 것은 (먹는 것 이상으로) 주님의 공간 이동 능력입니다.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는 마음먹으면 뉴욕의 가장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순식간에 이집트의 피라미드 위에 올라섭니다. 현실에 있어서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저같은 활자 중독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대번에 교보문고나 헌책방 거리, 국립 도서관을 떠올립니다. 그렇다면 수시로 점프를 해서 그곳에 가서 책을 볼 것입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떨고 있을 때 주님은 그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거나, 문을 통과해서 들어오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냥 그곳에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갑자기 나타난 천사들 셋도 그러했습니다. 세 개의 점이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져 그에게 다가왔고 그들을 발견하고 아브라함이 벌떡 일어나 발을 씻겨 주고 음식을 대접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들은 이미 아브라함의 눈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원에서 이런 식으로 공간 이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상상력이 넘치는 프랑스 작가가 쓴 빠삐용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지구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일단의 무리들이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정확히 소요된 시간은 잊어버렸는데 엄청난 속도로 달려 그곳에 도착하는데는 10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당연히 우주선을 타고 출발한 일세대가 아니라 우주 여행 중 우주선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이 소설에서는 단 두 사람의 남녀만 )그곳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되는 것이지요. 약간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프랑스인의 유우머와 상상력을 저는 사랑합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contact 란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에는 과학자인 아버지와 어린 딸이 나옵니다. 딸이 묻습니다." 아빠!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에 사는 우리 인간만이 사고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야? " 아버지는 답합니다. "그건 알 수 없지만 아빠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우주를 만들어 놓고 지구만 사람이 살게 했다면 이건 엄청난 공간 낭비인 것 같아."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이 모든 우주에 그곳의 행성들로 사람들은 뻗어나가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은하수를 넘어 안드로메다로 우리가 지금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으로 뻗어나가 그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번성하라는 명령은 우리가 직접 지킬 수 없는 명령이 되겠지만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기 전에 주님이 상급으로 너는 두 고을 차지하라, 너는 다섯 고을 차지하라고 할 때 그것을 지상의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혹시라도 내게 고을 주시겠다고 할 때 내 고향 (정신적 고향) 대구를 달라고 할까 아님 부산을 달라고 부탁드릴까 살짝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습게도 고을이라고 하는 옛날 단어는 내게 곧바로 사또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최근에는 좀 수정했습니다. 이 고을이라는 의미가 한 도시 정도가 아니라 화성이나, 목성,천왕성 같은 행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우주 계획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0-22장에서 앞으로 펼쳐질 영원에 대해서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을 살짝 설명하신 후 주님은 우리에게 늘상 그랬듯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것들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말하면 어떻게 너희가 믿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영원은 지금은 우리의 수박보다 작은 두뇌로는 절대 제대로 그려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지했던 중국인처럼 단번에 헛소리 집어쳐 하고 소리질러서는 안됩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천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을 만드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천사는 가브리엘과 미가엘 뿐입니다. 가브리엘은 이스라엘과 관계되어 있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의 일을 주로 합니다. 미가엘은 알려진대로 힘센 천사이며, 천사장입니다. 루시퍼란 이름도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그는 냉정하게 따지면 천사가 아니라 그룹입니다. 아무튼 통틀어 크게 셋 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기독교 작가는 천국에 가면 이 수없이 많은 천사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우리는 마침내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고, 최초의 창조를 직접 보았을 때 욥이 말한 것처럼 그들이 기뻐 소리질렀을 때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가의 생각을 저도 참 좋게 생각합니다. 천국에 대한 책, 이상한 환상 체험이 아닌 이 작가처럼 성경에 근거해서 설득력 있게 소개하는 책은 아쉽게도 무척 드물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것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현재의 삶이 너무 척박해서 그런 것일까요? 현재의 삶이 그럴수록 우리는 사실 더 영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천사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았고 경험했고 지성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저는 당초의 20-30만년의 도서관 기행을 잠시 미루고 살아있는 거룩한 존재를 책으로 삼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루할 틈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노동이라는 것은 범죄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기전 어떤 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땀을 흘리는 수고나 고통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이지 그들에게는 노동이 있었습니다. 아담은 동산을 가꾸고, 침입자를 막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명백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짐승과 날짐승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중복해서 같은 이름을 짓거나 아님 한 이름을 지어놓고 가령 넌 펠리컨, 그리고 그 다음 새는 펠리컨 2, 펠리컨 3 하는 식으로 성의없는 나사 직원의 별이름 짓기가 되어서는 안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노동입니다. 한국에서 목사로 일을 할 때 힘들었던 일 중에 하나가 새로이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된 형제나 자매가 내게 와서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는 경우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튼 우리는 영원에 들어가서 노동을 할 것입니다. 여러 행성들을 방문하며, 가꾸고, 저같은 경우에는 자기 계발을 할 것입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한 그림 실력을 가졌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어칠은 자기는 천국에 가면 일단 100만년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가 천국에서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길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영원에 비추어서 100만년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아까 잠깐 한 말을 다시 하자면 지금은 현세라는 것이 있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우리는 내세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원에 들어가면 내세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우리의 영원한 현세가 될 것입니다. 혹 흥이 나면 예전 선교회 동료를 만나 어디 소나무 아래서 줄을 쳐놓고 옛날을 회상하며 족구를 한 판 할지 모릅니다. 아님 여름수양회 끝나고 어설프게 그물을 던져 민물고기를 잡아 동네에 들어가 솥단지 빌려와 민물고기 들어간 라면 끓여먹었던 때를 추억하며 또 그렇게 라면을 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생명수의 강에 쏘가리나 피리, 모래무치가 살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지루하다니요. 그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계시록은 우리에게 종말을 보여줍니다. 이 세상이 결국 어떻게 종결되고 이 상태가 어떻게 계속 지속될 지를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계시록 마지막 장에는 다 이루어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21:6절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칠언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합니다. 그때의 의미는 우리의 죄를 속하는 일이 완벽하게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동일한 문장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제 완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미 모순되냐고 말합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창조시 하나님의 계획하셨던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로 세상을 파괴했고, 사단과 그의 악령들이 세상의 주관자가 되어 악한 일들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지나갔고 다시는 저주가 없는 완전한 세상, perfect world가 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종국적으로 주시고자 한 세상이었습니다. 오래 돌아서 마침내 이곳에 우리는 이르게 됩니다. 인간의 반역이 , 사단과 천사들의 반역이 이 주님의 계획을 좌절시킨 것이 아니라 잠간 유보시킨 것입니다. 마치 왕국이 이스라엘의 거부로 세상 마지막 맨 끝으로 밀려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대상인 아버지는 강한 전사이십니다. 그분을 이길 존재는 없고, 그분의 계획을 좌절시킬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만약 이 모든 친절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가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낙원이고, 이 경고를 받아들여 영생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그들이 마지막으로 경험하게 될 지옥입니다.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제가 다 언급하지 못했지만 -혹 흥이나면 다시 덧글의 형태로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숙제로 드리고 싶습니다. 

가령,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입니다. 그곳은 길이와 높이, 너비가 다 각각 지금 통용되는 도량형 개념으로 환산하면 2400킬로미터가 됩니다.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1000미터 그러니까 1킬로미터가 조금 못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새로운 도시는 높이가 자그마치 2400킬로미터입니다. 거기다 너비와 길이도 동일합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도시입니까? 이 도시의 체적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 아버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는 번역은 사실 dwelling place가 아닌 mansions 입니다. 

맨션이란 영어 단어는 원래 헐리우드 스타들이 사는 엄청난 대저택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프랑스 말 마담이 다방 여주인으로 의미가 왜곡된 것처럼 맨션 역시 한국에서 왜곡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혹 더 시간이 있거나 호기심이 생기면 새 예루살렘을 구성하는 보석들을 구글이나 네이버 형님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가며 어떤 보석인지, 어떤 모양과 색채를 띠고 있는지 이미지를 검색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발견된 가장 큰 진주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장차 우리가 거주하게 될 새 예루살렘의 문은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작은 진주를 붙인 것이 아니라 엄청난 크기의 문이 하나의 진주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골드바를 살 형편이 되어도 구매욕구를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집을 사기 전에 부동산 업자의 안내를 받으며 집구경을 하듯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집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을 좀 더 펼쳐 계시록 22장이 묘사하는 생명수를 거닐어 보기도 하십시오. 아까 언급한 쏘가리, 모래무치, 피리가 들어간 라면 때문에 저는 중국인들이 말한 수어청즉 무어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라는 ) 사실이 이곳에서는 아니길 바랍니다. 맑은 생명수 강에 내가 사랑하는 물고기들이 냄비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 제겐 그냥 맑기만 한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곳을 나같은 입주자 때문에 끊임없이 리모델링 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그랬음 좋겠단 희망사항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자주, 깊이 생각하다 보면 나중에는 여러분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말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Yasmin

 

 

선교사님^^ 긴 글 쉬지않고 읽어내려갔습니다. 

 

요즈음 한국의 분위기는(한국뿐만 아니겠죠.) 

정말 상상할수 없는 뉴스들이 방송을 통해서 연일 나오고 이젠 그런 뉴스를 들어도 슬프게도 제 마음이 무디어진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숙련공들은 매번 기술이 쌓이면 일이 쉬어진다고 하는데 삶은 경험이 업그레이드 될수록 쉬어지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날때가 있어 힘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죠.^^

 

또한 무엇인가 20대나 30대처럼 마음을 쏟을 것을 찾고 싶은데 과연 이일을 해서 나에게 어떤 발전이 있을까 하는 계산된 생각이 예전보다 있다 보니 하기도 전에 열정이 식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려고 했던것은 정말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땅의 삶을 마치 시들은 꽃이나 풀처럼 사는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라고 하신것은 아닐것같은데요. 

 

덧붙여 성경에 울때가 있고 웃을때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근래에 저는 울때이며 미워할때입니다. ^^

 

선교사님께서 써 놓으신 글처럼 항상 본능적으로 고민되는것이 이 땅에 살면서 어느정도까지 적절하게 살아야되는지입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요.

크리스챤들이 확실하게 천년왕국과 천국의 비젼을 가지고 있다면 현세에서 완전 김빠진 사람처럼 살지는 않을것같습니다. 소망이 있어야 지금 이땅에서의 삶도 행복하겠죠. 미래가 보장되어있으니까요.

 

주님을 찾는자에게 상주신다는 말씀이 있듯이 소망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바래서 기쁨의 상을 받고 싶습니다.

 

저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인데...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정정하겠습니다. 

천년왕국이나 천국에 가서는 창의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천국 아틀리에에서요. 이땅에서는 여러 제약이 있어 못하고 있지만요. 

 

주님이 어서 오셔야 제 꿈이 빨리 이루어질것같습니다. ^^

 

철부지 크리스챤이 ~

 

 

 

부흥과 개혁(작성자)

 

 

저는 최근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최근에 중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서도 그렇고 독일에서 감사하게도 최근에 만난 중국 부인을 통해서도 그러합니다. 이 중국여자 분은 중국에 와서 일하는 독일인을 우연히 만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독일로 온 케이스입니다. 여기 와서 대학을 다니고 -독일 대학 수준은 대체적으로 많이 높은 편입니다- 최근에는 여러 책들을 읽으며 인생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너무 악하고 의미가 없고 왜 이런 지 모르겠고... 복음을 들을 준비가 어느 정도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연이어 세 번 정도 만나서 교제를 나누고 있는데 아주 잘 듣고 질문도 많이 합니다. 이 분이 제게 중국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중국인들이 과거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지만 사람들이 점점 이상하게 되어 간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도 저의 지인을 통해서 그런 변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라이프찌히)공부할 때 우연히 만나서 저희 교회를 나왔고 그러다 졸업 후 고향인 남경으로 돌아가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성공한 소위 말하는 커리어우먼이 되어서 30명 정도를 거느린 팀장이 되어 700-8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제 딸 아이를 중국에 초청하여 (비행기 표를 사서 보내고 홍콩의 별 다섯개 짜리 호텔에서 며칠 자고 .. 등등)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제 딸아이를 잘 접대했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아쉽게도 그녀가 자본주의의 편리함과 또 옥죄이는 체제 속에 갇혀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때에는 목사인 제가 참 좋습니다. 네가 중국에서 직업적 성공을 어느 정도 거둔 것은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마음에 평안은 없지 않느냐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도 그것을 시인하고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고 중국에 초청할테니 자기도 좀 이끌어 주고 자기 부모님에게도 친지들에게도 복음을 전해달라도 부탁했습니다. 상하이나 북경, 남경 같은 대도시에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정신을 강하게 갉아먹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며, 정작 왜 그렇게 사는지는 모르는 삶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곳에서 만난 중국 젊은 부인은 최소한 그러한 것들이 의미가 없고 사람들이 다 미쳤다는 것을 제가 알려주기도 전에 먼저 삶을 통해 깨달아 알고 있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우리 주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또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 사실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한 때 소로우의 책과 그의 생활 방식에 대해서 호감을 가졌습니다. 물론 지금도요..

 

 

 

부흥과 개혁(작성자)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 악한 것이지만,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 쾌활한 기운 (요즘은 행복 바이러스라고 하더군요) , 에너지를 타인에게 전달해 주지 않고 베르테르나 햄릿처럼 침침하게 사는 것이 죄라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표정을 살펴보며 쉽게 우리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어 할 것입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은 천년왕국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제가 믿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이 순간이 즐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두가 청교도처럼 (부정적 의미에서), 수도원의 수사나 수녀처럼 살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계속 자매님이 하고 싶은 일들을 추진하시고 인생을 너무 수학적으로(계산적으로) 사시지는 말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현실은 물론 팍팍하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도 많고, 한숨이 나오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 자매님이 말씀하신 예술이란 말의 정의에 대해서 격하게 공감합니다. 사실 그것이 일부 예술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한국식 영어로 파이팅입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오늘 저는 제가 위에 올린 글에 대한 보충으로 두 가지를 추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천국에서의 우리의 기억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천국에서 지금 우리의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될런지, 우리가 다른 이들과 그곳에서 맺는 관계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성경을 근거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억에 대한 것을 왜 우리가 다루어야 하냐면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래서 천국에서 영원을 보낼 때 불못에서 형벌을 받는 우리의 가족들,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할 때 과연 이러한 기억 속에서 사는 천국이 천국이 될 수 있겠냐는 당연한 의문에 기인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항상 지침이 되는 규칙은 성경이 우리를 이끄는 만큼 가고 성경이 멈추는 지점에서 멈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규칙을 마음에 두고 탐구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이 시작되기 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외과적 수술을 하시거나 아니면 최면 요법 등을 사용하여 우리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연관된 우리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의 대부분이 우리 가족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이 기억을 지워버릴 때 대부분의 우리의 기억도 사라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지옥에 있다는 것이 아픔이 되어 천국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기억들을 지워버릴 때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좀 우답이 될런지 모르지만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니리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영원에서는 슬픔이 없습니다. 아픔도 없습니다. 

이 아픔이라는 것이 어떤 병이나 사고로 인한 육체적 아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아픔도 당연히 포함할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을 앞으로 만드실지, 우리 기억이 유지되는 것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때로 우리가 지상에서의 우리의 바보 같은 삶을 회상하며 이런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영원히 찬송하려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의 삶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기억이 우리에게 아픔이나 슬픔, 눈물나게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로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록의 이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저는 여전히 굳게 붙듭니다.

우답을 정리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여전히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억이 우리를 슬픔으로 몰아넣거나 눈물 흘리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감정을 잃어버린 대신에 안정을 택한 그런 로버트 같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알츠하이머같은 병을 앓아 자기가 금방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가까운 이들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일일 것이고,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질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마치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의 불행하게 된 가족에 대한 기억도 다 잃어버려서 그냥 멍한 표정으로 기뻐하고, 멍한 상태에서 즐거워한다면 

이것은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들을 위한 요양원은 될 수 있어도 천국이라 부르기는 민망한 곳이 될 것입니다. 

기억이란 것은 나를 형성한 중요한 부분인데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냥 기억이 없어지거나, 지워진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영원에 들어가면 전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금의 상식은 말합니다. 

만약 비가 계속해서 온다면 전쟁은 실내 체육관에서 열릴 것이다. 

러시아 속담입니다.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의 욕심, 본성이 존재하는 한, 항상 부조리는 있고 전쟁과 폭력은 멈추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시록에서 완전한 세계를 말씀하십니다. 

전쟁 무기가 불타고 사자가 양과 함께 풀을 뜯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오기 전에 근본적인 변화가 피조물과 사람에게 있어야 합니다. 

환경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든 상수를 집어넣고 계산을 해도 이러한 답은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계획과 사랑을 집어 넣으면 이런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게 됩니다. 

누가 내게 직설적으로 천국에서 우리는 우리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됩니까? 하고 묻는다면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억이 우리를 아프게 하거나 슬픔에 잠기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다시 질문하신다면 

저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개구리가 황소에 대해서 들을 때 

배에 바람을 잔뜩 넣어서 이만큼 커? 하고 질문하는것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 경험한 것을 다 모아서 상상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저는 이 말씀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두 번째 건, 천국에서의 우리의 가족 관계, 인간 관계에 대해서 같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느날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랑 살다가 그 남자가 죽었다. 

그래서 형사취수의 법에 따라 둘째 시동생이 형수에게로 들어가 형의 대를 이으려고 했다. 

그런데 둘째도 죽었다. 

셋째도 죽고, 

일곱째까지 다 죽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도 죽었다. 

그렇다면 부활 때 이 여인의 남편은 누구인가?

그때 주님의 대답은 너희가 하나님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크게 오해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천국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시간의 흐름이, 변화가 굉장히 더뎠습니다. 그래서 주후 300년에 살던 사람이 500년이나 1200년 되는 시점으로 옮겨도 크게 혼란스러운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말대로 현대는 지식과 정보가 흘러넘치고 사람들은 빠르게 이동합니다. 

그래서 과거 140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축척된 지식과 정보, 기술이 지금은 일 년 만에 축척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 말은 아마 더 이상 유통될 수 없는 경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마 1700년에 살던 사람이 현재로 옮겨 오면 그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휴대전화를 이해할 수 있고, 텔레비젼,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에게는 이해 밖의 세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천국이란 세계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조금 나아진, 변형된 세계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고 다른 세상입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우리는 예전의 사람들이 청동거울 너머로 흐릿하게 자신을 보듯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영원에 대해서 손바닥 들여다 보듯 환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영화의 트레일러처럼 영원의 한부분을 조금 보여줄 뿐입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가족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결혼한 사람에게는 일단 지금의 아내, 남편이라는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고 일부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슬픈 소식입니다. 

서양 속담에 모든 사람을 만족케 하는 기술은 아무도 갖지 못한 기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지금 배우자와 영원을 보낸다면 그게 내게 지옥이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동시에 만족을 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일한 가능성은 우리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고, 

지금의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얼마전 돌아가셨지만 피터 럭크만이란 목사님을 통해 저는 교리적으로 중요한 많은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때로 그의 극단적 태도와 교리를 다 수용하는 것은 좀 어려웠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휴거하거나 부활하면 주님처럼 된다고 했으니까 모두가 33세된 남성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자매님을 영원에서 구레나루가 가득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상상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휴거할 때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는 구절 때문에 휴거하는 이들이 금붙이나 보석, 옷가지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피를 몽땅 쏟아놓고 간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도 그리 아름다워보이지 않습니다. 제 눈에 아름다워 보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주장들이 과연 성경적인 정확한 근거가 있느냐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된다고 하는 말을 확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모두가 33세된 남자로 바뀐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천국에서는 남편과 아내라는 이땅에서의 관계는 소멸됩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까요?

영원히 전 남편이나 전처를 남사친과 여사친이라는 관계 속에서 만나는 것도 제겐 나빠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영원은 지금 우리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뿐 아니라 다른 관계도 바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보다 200살 많은 조상을 그곳에서 만났을 때 설날에는 큰 절을 올려야 할까요?

한국식 예절로 그는 나에게 편하게 말을 낮추고 저는 공손하게 존댓말을 해야할까요?

만약 유관순 누나를 영원에서 만난다면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님 누나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님 그냥 관순씨 할까요?

독일 생활 초창기때 독일어 학원에서 한 여자 한국 유학생을 만났는데 저보다 나이가 7살 정도 적었습니다. 

독일어를 잘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국말을 서로 하면 그녀는 제게 존대말을 써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대부분 서로 독일어를 했습니다. 

좀 어색하기 했지만 (때로 ) 그렇지만 한국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서로가 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이에 의해 결정된 관계, 연장자와 연소자의 관계 이런 것도 지금과는 달라야 할 것 같습니다. 

바울을 내가 만날 때 나보다 적어도 2천살은 많은 연장자로 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다 없어지고 모두를 다 동무로 호칭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서로 어색해하며 눈 마주치면 피하는 그런 관계로 영원을 보내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가 완전히 해체되어 지상에서의 부모님을 볼 때, 자식을 만날 때 

못 본체하는 그런 천국을 일단 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천국에서도 끊임없이 길 건널 때 차조심하라고 부모님이 그렇게 영원히 잔소리를 늘어 놓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관계가 해체되지만 마치 지구가 불에 타지만, 체질에 불에 녹지만 새로운 땅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처럼 

이 관계가 해체되고 다른 형태의 관계로 완전한 관계로 옮겨가리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영원이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 만족의 세계가 되려면 지금 우리의 체제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내가 맺고 있는 가족간의, 친구간의 관계가 해체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기보다는 주님이 만들어 주실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소망과 기대를 갖는 것이 훨씬 건강하리라 믿습니다. 

 

 

 

부흥과 개혁(작성자)

 

가정이라는 것은 원래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제도였습니다. 결혼 제도라고도 할 수 있지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가정을 이룹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면 자식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자라면 , 시간이 지나면 인척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유한하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입니다. 

그러나 천사에게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습니다. 

그들은 죽지 않기 때문에 종족을 결혼제도를 통해 유지하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부모라는 것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일도 영원에서는 없게 됩니다. 

철도 여행의 역사란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철도가 생김으로 생겨난 일상의 변화에 대해서 그 책을 통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기차란 문명의 이기가 철로 위로 움직이는 것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모릅니다. 시간과 공간에 개념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왔습니다. 

가까운 예로 우리에게 휴대전화와 카톡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트 같은 소셜 네트워크 등은 우리 삶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블로그란 것이 생겨서 며느리가 블로그 올릴 사진 찍기 전에 수저를 들고 먹는 시어머니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하나의 기기가 아닌 그냥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 싼 세상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모든 관계와 가치기준이 바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도 그러합니다. 

천국의 바뀐 환경, -가령 결혼 제도가 없다거나,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

은 당연히 엄청난 변화를 우리 삶에 가져 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한정된 경험과 지식으로 그 천국을 제대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 변화는 우리가 상상 가능한 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화에 대한 제대로 대한 값이 나오려면 먼저 올바른 자료가 주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사실 그런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것 안에서 그냥 대략 그려보는 것일 뿐입니다. 

가족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부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천국에서는 모두 독신자 아파트같은 곳에 다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불에서 건져 주시는 것으로 임무를 끝내지 않으시고 우리의 영원한 복지를 생각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또 나를 믿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 ?
    도기리 2019.05.03 06:10

    독일 루드빅스하펜 교회에서 섬기고 있는 우승기 형제입니다. 최근에 천국(하늘나라)을 좀 구체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 보았고 생각했던 것을 글로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좀 긴 글이긴 하지만 우리의 본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소망을 갖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천국도 지옥도 마음에 장소라는 그딴 소리하는 이들의 입들이 다물어지기를 바랍니다. 글이 좀 길어서 ... 혹 도배질이라는 오해가 생길까봐 살짝 겁이 나긴 합니다. 

  • profile
    plan-B 2019.05.03 08:03
    유익한 도배질, 감사합니다.ㅎㅎ

    다른 사이트에 쓰셨던 글인 모양입니다.
    폰에서 우측 문단이 잘리고 추가하신 댓글 부분이 겹쳐 읽을 수가 없어서 텍스트만 정리해 드렸습니다.

    도기리 님을 이슬람 우호주의자로 잘못 아는 분들도 있지만, 교리와 인간에 대해 바르게 구분하면 모두 명백해지는 것 같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file
    북경아재 2019.05.03 22:32
    엄청난 스압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읽었습니다. 첨엔 반복되는 소제목때문에 무슨 오류인 줄 알았어요...ㅋㅋ

    도기리님도 데이빗님처럼 말을 참 재밌게 하시네요.^^ 이민 생활 하시면서도 한국 트렌드에 별로 뒤쳐지시는 것 같지 않구요... 물론 위트에 연륜은 묻어 나오지만요...ㅎㅎ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가끔 상상해보다가 금방 끊기곤 하는데... 도기리님 덕에 상상이 좀 더 길게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실제 천국의 모습 백만분의 일, 아니 비교가 무의미한 아예 사람의 지각을 초월하는 딴세상일테지만요...ㅎㅎ

    약간 침체(?)된 듯한 플랜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글인듯 하여 더욱 반갑고 감사합니다.
  • profile
    라스트러너 2019.05.07 07:01

    좋은 내용의 글 감사합니다!

    종종 이렇게 은혜로운 도배질 부탁드립니다.^^

  • profile
    돌멩이 2019.05.17 17:3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빈약한 상상력에 뽐뿌질이 마구마구 들어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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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eat. 딸래미)

      "플랜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해요~~"   ...라고 해주면 껌을 준다고 했는데, 껌을 먼저 주면 해주겠다는 제 딸래미..입니다 ㅠㅠ  그래서 껌을 씹으면서.. 촬영했네요..ㅎㅎ..   플랜비 성도님 모두 명절 잘 보내세요^^
    Date2019.02.04 By승아아부지 Views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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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제임스 성경 변증 5 -성도여, 방패를 들라!-

    꽤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그동안 이러한 이슈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오지는 않고, 소강상태에 이른 탓인지 저도 소재를 찾는 데 시간을 쓰다 못해 지치고 말았었습니다. 기말 시험이나 잘 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거죠....
    Date2019.01.07 By다니엘모스 Views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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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쉬운 마케팅 이야기 ** 주의 ! 절대 영적인 관점에서 보지 말아야 함^^ **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     매년 결심했던 바를 채이루지 못하고 끝내는 것이 참 아쉽죠. ㅎㅎ  오늘 누구랑 - 여러분이 알만한 ㅋ - 얘기하다 예전에 제가 했던 일이   새삼 생각났습니다.     학교 공부에서, 하고 있는 일에서 혹시 필요한 내용일 ...
    Date2019.01.03 ByDavid Views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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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을 살아오면서 감사한 것

    라스트 러너님의 설교말씀 중 감사할 것을 생각해보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저도 2018년을 살아오면서 감사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가장 크게 감사한 것은 플랜비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여주시고 알려주신 것에 대해 가장 크...
    Date2018.12.31 By순닮청 Views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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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대전은혜침례교회 한해를 정리하며

    한해 동안의 교회 모습을 정리한 동영상과 연말 행사 동영상입니다.
    Date2018.12.26 By첼리파머 Views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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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주신 눈... 부디 옳은 것을 보게 하소서(기도)

    라스트 러너님의 데살로니가 전서 강해 말씀 중 음행에 관한 말씀을 들으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며 생각하고 다짐을 하며 글을 조심스럽게 올려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여 승리의 삶을 간증으로 말씀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송구스럽습니다.) 오랜 기간...
    Date2018.11.23 By순닮청 Views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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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나누기!!

    [골로새서3: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에베소서4: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
    Date2018.11.18 ByJoseph Views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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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

    (kjv흠정역)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주}의 뜻, 그것만 서리라.    안녕하세요. 평택진리침례교회입니다. 이번 강연회가 우리 평택진리침례교회를 시작으로 총 일곱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화요일에 주님의 은혜로 잘...
    Date2018.11.15 By주와함께 Views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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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선하신 맛

    시편 34편 8절 말씀 오 주께서 선하신 것을 맛보고 알지어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사람은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면 그 맛을 기억합니다. 또 맛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맛을 느낍니다.   짠맛, 단맛, 매운맛 등 사람은 어...
    Date2018.10.31 By히스기야 Views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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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하는 성질.

      제가 좀 욱 하는 성격이 있는 편입니다. 특히 제 아이가 하는 행동을 어른으로서 잘 헤아리지 못하고 화를 낼때가 많죠. 욱하는 성질때문에 크게 화를 내고선 몇 번이고 후회를 거듭하다가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모세가 생각났습니다. 잘...
    Date2018.10.26 By돌멩이 Views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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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마가복음 9장 14-24절 말씀 ···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하시니   24 즉시 그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주여, 내가 믿...
    Date2018.10.23 By히스기야 Views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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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5장 11절 말씀 오직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줄을 믿노라, 하니라. +시편 145편 8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동정심이 많으시고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긍휼이 크시도다.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가 믿음을 통...
    Date2018.10.18 By히스기야 Views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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