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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몸부림이

참된 말씀으로 돌아가기 위한 

열정이기를...

 

김대용_서울침례교회 전도사

 

 

iStock_68485417_LARGE.jpg

 

*

 

저는 다섯 살 무렵 동네에서 정신없이 뛰어놀다 근처 교회 청년부 전도팀에게 포섭되어(?) 난생처음 복음을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종종 여름성경학교를 나갔고 6학년 때부터 지속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해 중학교 시절 구원받으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의 문이 열렸습니다.

 

고등부 시절엔 제법 열정이 있었습니다. 리더를 맡아 학생부를 잘 이끌어보려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교회에 모여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제 딴에 마치 한 부서를 담당하는 전도사 정도의 무거운 책임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서빙고동의 한 대형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경배와 찬양 문화와 함께 청년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던, 요즘 말로 핫한 교회였습니다. 어찌나 여기저기서 청년들이 몰려들던지 각 지역 사투리를 다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각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청년들이 다 이 교회로 모이는 듯했습니다.

 

요즘에야 대형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당시에는 좀 더 발전된 시스템과 교육 프로그램, 건전한 목회 마인드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회로만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그 교회를 다닌다는 것, 아니 내가 이런 좋은 교회를 선택한 안목이 있다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3년 정도를 다니고 보니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교회라는 틀 속에 형식화, 양식화된 문화와 제도들. 화려하지만 진정한 친밀감을 유지하기 어려운 청년부. 그래서 저는 좀 더 친밀한 믿음의 교제를 갈망하며 집에서 불과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정말 가까운 동네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교회였지만 소신에 찬 목사님의 설교가 참 좋았습니다. 더구나 교인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역시나 그 지역에서는 가장 핫한 장로교회였습니다. 급기야 지금은 만 명 성도에 육박하는 대형 교회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 교회도 3년 정도를 다니고 보니 이런저런 문제들이 보였습니다. 방언 많이 하고 믿음이 좋다는 집사님, 장로님들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행들. 청년부 담당 목사님의 열정을 가장한 성공주의의 볼모가 된 청년 지체들. 결국 그곳도 더는 참을 수 없어 청년부 목사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얼마간의 가나안 성도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미국에서 몇십 년 이민 목회를 정리하고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마감하려는 50대 후반의 장로교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신학을 공부하며 전도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학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킹제임스 성경과 독립침례교회를 알게 된 겁니다. 근본주의 신학을 알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니 그동안 일반교회 다니며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옳았다는 것에 매우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당연히 제 양심이 시키는 대로 올바른 교회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

 

그 뒤에 역시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약 4년 반 전에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독립침례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정말이지 교회와 성도 간의 갈등으로 고민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람의 본질을 아직도 충분히 깨닫지 못했던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본질 면에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본성을 유지하는 몸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기성교회 신자나 독립침례교회 신자의 차이는 전혀 없지요.

 

지나온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름 열정이 불타올랐던 때가 있었습니다. 비록 교리가 좀 틀리고 미숙한 부분이 있었던 일반교회 시절도 무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보겠다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독립침례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던 4년 반 전에도 이제 정말 제대로 믿음생활을 해 봐야겠다는 제법 굳은 각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할 만큼하고 겪을 만큼 겪어서인지 이젠 왠지 제 마음의 열심이 시들해진 것만 같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직감했던 순간까지도 바울의 꺼질 줄 모르는, 여전히 빛바랜 흔적이 없는 열정과는 극명하게 비교됩니다.

 

이제 내가 내 자신을 헌물로 드릴 준비가 되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冠)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딤후 4:6~8)

 

요즘 고민은 ‘왜 나의 내면에는 빛이 바랜 열심만이 남아 있는가’입니다.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비단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총체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립침례교회에 몸담고 있지만 기성교회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수준 낮게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거 한국의 교회들이 보였던 순수한 열심만큼은 충분히 평가받을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열심조차 많이 사라진 듯 보입니다. 반면 독립침례교회들도 ‘왜 우리가 바른 교리와 탁월한 성경을 가지고도 이 모양인가’라는 해묵은 자조가 대변하듯 무언가  아쉬움이 있습니다.

 

요즘은 설교의 홍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이 많은 설교가 성도에게 영적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요. 손가락만 까딱하면 쏟아지는 설교 풍년의 시대에 왜 사람들의 열심은 점점 식어만 갈까요.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기독교계의 영웅호걸들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 좋은 교회, 이상적인 교회에 근접했다고 여겼던 교회들이 여지없이 추락하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이제는 하다 하다 그 모든 것을 섭렵하고 정말 바른 신약 교회를 해 보겠다는 독립침례교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까지 경험합니다. 아니라고,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보느냐고 항변하는 분들께 설명하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아시나요? 2016년 10월 출간된 이 페미니즘 소설은 나온 지 14개월 만에 무려 50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출판계가 장기 불황의 늪에 허덕이는 시대 출간 약 1년 만에 이 정도의 판매량은 놀랍기 그지없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독자들은 이 소설의 무엇인가에 끌려 책을 사서 읽고 또 읽는다고 합니다.

 

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소설 줄거리는 30대 중반의 극히 평범한 주부 김지영이 지친 자신의 일상을 견디다 못해 소위 빙의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제야 자신의 억눌린 속마음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접신과 빙의가 누구의 장난인지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소설의 주인공 김지영은 자신의 친정엄마나 심지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소위 빙의하여 잃어버린 자신의 실존을 찾아갑니다. 이렇듯 요즘엔 무속 메커니즘을 통해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는 대상이 비단 한 나라의 통수권자뿐 아니라 삶에 찌들고 지친 소시민 모두가 되어가나 봅니다.

 

무당이 주는 거짓 위로와 격려조차도 이기지 못하고 점점 무력해지고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 시대의 교회. 정말 탈출구는 없는 걸까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름 떼처럼 몰려들던 사람들이 이제 더는 교회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위로받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급한 때 탈출구를 제시해야 할 근본주의 침례교회들은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미국식 교회와 자기 아집의 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어딘가에서 계속 헤매고 있습니다.

 

요즘은 뭐든지 몇 개월만 지나도 올드한 유물로 취급받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대중은 간혹 까마득한 1987년의 스토리로 만든 영화에 열광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성경과 교회에는 열광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이 사회를 위해 아직도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혼돈의 시대일수록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 의욕을 잃게 만드는 일이 주위에 즐비합니다. 가장 투철하게 삶의 목표를 제시해야 할 영적 리더가 초라한 민낯을 드러내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성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으로 드러난 각계각층 리더들의 추한 민낯도 사람들의 다리 힘을 풀리게 만듭니다.

 

이 땅엔 부족한 교리와 열악한 영적 환경에서 애처롭지만 뜨겁게 열심을 불태웠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청춘과 열정과 돈과 인생이 연료로 소모된 결과 많은 중대형 교회 건물이, 즉 콘크리트 덩어리가 생겨났습니다. 흔히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하는데 한국 기독교계에서 남은 건 잿빛 콘크리트 더미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독교계 영웅호걸들의 몰락과 교회의 추락을 지켜봤던 우리는 이제 어디로 걸어가야 합니까? 말로야 이 문제에 대한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글에서 정답을 내지 않고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기겠습니다.

 

*

 

돌고 돌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섭렵한 지금. 나의 빛바랜 거룩한 열심을 보며 한탄하는 지금. 그래도 저는 다시금 일어나 보려 합니다. 인생의 끝자락까지 마지막 열정의 심지를 불태웠던 바울을 본받기 위해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다시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 몸부림을 쳐 보고 싶습니다.

 

다만 바울의 저 위대한 고백처럼 이 영적 혼돈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이 발견되길 원하며 몸부림치듯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던 과거뿐 아니라 그 후 앞으로도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하게 예수님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빌 3:8~9)

 

더불어 절망의 시대 대언자로 부름을 받은 예레미야!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평생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러나 단 몇 사람만이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했습니다. 절망감이 접착제처럼 그에게 달라붙어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불같이 타오른다고 고백하며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속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날마다 조롱을 받고 사람마다 나를 비웃나이다. 주의 말씀이 날마다 내게 치욕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으므로 내가 말을 시작한 이후로 부르짖되 폭력과 노략에 대해 부르짖었나이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도다.(렘 20:7~9)

 

독립침례교회 성도이면서도 제가 다들 달가워하지 않는 자기 부인의 발언을 계속하는 것, 즉 이 진영의 약점과 민낯을 드러내려는 것도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입니다. 팟캐스트, 미디어 사역, 청년 사역의 다각화 등 생소한 시도를 자꾸 하는 것도 트렌드에 영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입니다. 전쟁의 위험이 가중될수록 물질세계, 즉 사회 담론에 몰두하기보다는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을 내보려는 것도 몸부림입니다.

 

아직도 뿌리 깊은 오해를 거두지 않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알려보려고 여러모로 움직이는 것도 몸부림입니다. 계속 실망에 실망을 거듭해도 포기하지 않고 바른 신약교회, 참으로 좋은 교회를 한번 세워보려는 것까지도 모두가 처절한 영적 몸부림입니다.

 

저는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말씀으로 돌아가 힘을 얻고 선한 행위에 대한 빛바랜 저의 열심이 다시 타오르도록 은혜를 부어주소서!”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 profile
    라스트러너 2018.03.05 22:02
    한국 교회 안에 이런 몸부림이 부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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