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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7 23:33

쓴 뿌리 vs. 용서

조회 수 307 추천 수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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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飛 칼럼]

용서를 통해 쓴 뿌리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는 법

 

이이레_서울침례교회 담임목사

 

 

'plan-飛 칼럼'은 우리의 신앙을 한 단계 도약시키자는 제안입니다. 배울 만큼 배웠습니다. 이제 지식을 삶에서 실천하는 성숙한 성경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이레 형제님이 설교시간에 나눈 내용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bitter-root1.jpg

 

 

누구나 지니고 있는 쓴 뿌리


우리는 오늘도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지금도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 속에서 대적 마귀는 우리를 언제 어디서나 타깃으로 삼고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자, 우리의 관계를 와해하고자, 우리의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 공격할까요? 마귀가 우리를 삼키기 위해 사용하는 간계와 불화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 간사한 계략들이 성경 말씀에 노출되어 있는데요, 오늘은  그중 정말 치명적인 것 중에 하나인 ‘쓴 뿌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쓴 뿌리라는 주제는 상당히 무겁고 민감한 문제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별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처에 대해서, 우리의 갈등에 대해서, 우리의 다툼에 대해서, 우리의 미움에 대해서, 우리의 분노에 대해서, 우리의 쓴 뿌리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쓴 뿌리라는 주제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쓴 뿌리는 그 모습, 종류, 성질, 원인, 그리고 그 대상과 온도가 사람마다 다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로 인한 쓴 뿌리가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미움, 시기, 질투로 인한 쓴 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서, 또 어떤 사람은 고난과 시련으로 인해서 쓴 뿌리를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나 부모, 혹은 자녀를 향해서 쓴 뿌리를 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친구나 교회 안에 다른 성도를 향해서 쓴 뿌리를 품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상황을 향해서 쓴 뿌리를 품다가, 심지어 결국에는 하나님을 향해서 쓴 뿌리를 품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쓴 뿌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용서하는 것인데,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다시 받아들인다는 것, 나와 다투었던 사람과 화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의 쓴 뿌리는 대부분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감히 여러분에게 쓴 뿌리와 용서에 대해서 설교를 하지만, 사실 이 설교는 저를 위한 설교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보다 저부터가 이 설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저는 이 설교를 별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면 (조금 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저는 ‘그 사람’을 별로 용서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뿌리 깊은 미움을 직시해야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이 쓴 뿌리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내 귀가 불쾌하고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내 쓴 뿌리가 내 마음에서 뽑혀져 나갈 때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이 쓴 뿌리를 뿌리째 뽑아야 합니다! 왜냐면 영적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내 마음속에 쓴 뿌리가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나는 마귀의 장난감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쓴 뿌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고 쓴 뿌리가 돋아나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도록 할지니 (히 12:15) 

그러면서 고린도후서에서는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노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해 한 것이니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고후 2:10-11) 

우리에게 아직 쓴 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사탄은 그의 계락들을 가지고 우리를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이용해 먹으려고 할 겁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반드시 다뤄져야 합니다.

솔직히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고, 아마도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물론 온도차는 있겠지만) 우리는 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설교자가 어느 날 미움과 용서에 대해서 설교를 하다가, 설교 중에 청중들을 향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혹시 여기에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아무도 없죠?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뒤에서 백발의 한 어르신이 손을 슬쩍 드는 겁니다. 순간 설교자는 당황했지만 그냥 못 본 체하고 설교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난 다음에 그 어르신에게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어르신, 사실 어르신께서 손을 드신 것을 제가 봤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으세요? 어떻게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그 어르신이 행복한 미소를 띠면서 대답했습니다.

“있었는데, 다 죽었어.” 

쓴 뿌리는 우리 모두가 발버둥 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나길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용서하는 마음으로 쓴 뿌리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의 말씀을 통해, 쓴 뿌리를 뽑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중에 하나인 용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진짜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그를 용서 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하매 (마 18:21)

어쩌면 베드로의 이 말에는,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알게 모르게 우리는 나도 내 형제에게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나한테 잘못한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섭섭하게 한 것, 다른 사람이 나한테 상처 준 것에만 집중하면서, 나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합니다. 나도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섭섭하게 했을 수도 있고, 나도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무시하는 겁니다. 

나만 참고 있고, 나만 용서하고 있고, 나만 힘들어하면서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나를 참아주며 나 때 문에 상처받아 힘들어하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그 사람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이런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A라는 학생이 와서 상담을 요청합니다. 
“B 학생이 저한테 이런 잘못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C라는 학생이 와서 말합니다. 
“A 학생이 저한테 이런 잘못을 했어요.” 

이번에는 B 학생이 와서 말합니다. 
“C 학생이 저한테 이런 잘못을 했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일 수 있고, 나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일 수 있으며, 나도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적인 있는 사람인 겁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용서해야 합니까?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12-14)

 


어디까지, 얼마나 용서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하라. (마 18:22)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이 어떻습니까? 기준에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어떻습니까? 참을 만큼만 참고, 용서할 수 있는 것만 용서하는 겁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이 쉽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냥 말뿐인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자 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 반드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하라.”



Forgive.jpg

 


대체 왜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하지?

본문 말씀 23-35절을 잘 읽어보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할 이유가 생깁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용서하셨기 때문이며, 지금도 그렇게 용서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서 종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습니까? 만 달란트를 빚졌습니다. 이 시대의 한 달란트는 금의 한 달란트 무게, 약 34kg의 가치를 말하는데, 이것을 오늘날 시세로 따지면 약 20억 원의 가치가 되고, 만 달란트면 20조 원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금액은 이때 당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갚을 수 없는 빚인 겁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그 빚을 다 용서해 준 겁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요. 

우리의 죄는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빚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그 은혜는 우리가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고 난 후에도 연약하고 부족해서 얼마나 많은 죄들을 짓고 있습니까?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고,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영을 슬프게 하고 있으며,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있습니까! 아마 이것에 벌금을 매긴다면, 20조 원이 훨씬 넘을 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제한 없이 용서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말이죠.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때때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종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자기에게 빚진 동료를 찾아가서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용서하지 못하겠다면서 감옥에 가둬버리는 겁니다! 

이 동료는 얼마를 빚졌다고 쓰여있습니까? 백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때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였으니 오늘날로 환산하면 80,000원 정도인 겁니다. 그러니까 백 데나리온이면, 800만 원입니다. 

 

“와! 800만 원이면 굉장히 큰 금액인데요!” 

맞습니다, 굉장히 큰 금액입니다. 20조 원을 망각한다면요. 

만 달란트를 용서받고 백 데나리온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이건 너무나 민망한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 31절에 이렇게 쓰여있는 겁니다. 

“심히 민망하여”

우리가 형제나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또 그분의 천사들이 볼 때, 그리고 성도들이 볼 때 심히 민망한 일인 겁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자기 형제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같이 하시리라, 하시니라. (마 18:35)

또한 마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R. T. 켄달(R.T. Kendal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용서할 이유가 있으며, 용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필수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예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용서하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에베소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진노와 분노와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엡 4:31-32)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데요!” 


우리도 사실 용서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나 자신은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의 경우가 되면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제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구한 적이 없는데요!”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용서를 구하지 않은 잘못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 사람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닌데요!”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는 그다지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닐 겁니다. 

3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내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괴롭더라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를 꽉 물고 용서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 내가 당신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내가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신이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계속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와 저주, 상처, 불만, 쓴 뿌리에 갇혀서 하나님의 영광을 놓치며 그분의 은혜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누구를 감옥에 가두는 겁니까? 나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결국 누가 감옥에 갇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그의 동료 종들이 일어난 일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자기 주인에게 가서 일어난 일을 다 고하니 그때에 그의 주인이 그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오 악한 종아, 네가 내게 애걸하기에 내가 네게 네 빚을 전부 용서해 주었은즉 내가 너를 가엽게 여긴 것 같이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겼어야 하지 아니하느냐? 하고 그의 주인이 노하여 그가 자기에게 진 빚을 다 갚기까지 그를 형벌 주는 자들에게 넘겨주었느니라. (마 18:31-34)

루이스 스메디스(Lewis Smed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포로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로가 바로 당신 자신이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쓴 뿌리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우리 자신의 자유를 위해 그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 자신을 감옥에서 풀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러므로 그 종이 엎드려 주인에게 경배하며 이르되, 주인이여, 나를 참아 주소서. 내가 주인께 다 갚겠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를 풀어 주며 그에게 그 빚을 용서해 주니라. (마 18:26-27)

그때에 그의 주인이 그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오 악한 종아, 네가 내게 애걸하기에 내가 네게 네 빚을 전부 용서해 주었은즉 내가 너를 가엽게 여긴 것 같이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겼어야 하지 아니하느냐? 하고 (마 18:32-33)

물론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 속에 정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쌍한 일입니다.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성경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누구나 불쌍한 부분이 있습니다. 

오래 전인데도 마치 트라우마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저희 반에 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은 소위 말해 ‘문제아’였습니다. 초등학생 3학년이 벌써 문제아가 된다는 것은 드문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 문제아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큰 비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면서 거칠게 행동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항상 뭔가 불만에 차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매일 1시간씩 학교에 지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숙제를 한 번도 해온 적이 없었고,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온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많이 혼나기도 하고,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떤 계기로 그 학생과 절친한 사이가 됐는데, 어느 날 저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겁니다. 자기 엄마가 저에게 맛있는 걸 해 주고 싶어 하신다면서요. 그래서 학교가 끝난 후 친구와 함께 집으로 따라가는데 아무리 걸어가도 집에 도착하질 않는 겁니다. 아파트 단지는 다 지나갔는데도 도통 집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1시간 이상을 걸었는데, 결국 산 문턱이 나오더라고요. 그러고는 또 20-30분을 산을 타고 올라갔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정말 집이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처음에 현관인 줄 알았던 곳이 부엌이고, 그러면서 거실이고, 동시에 침실이었습니다. 도저히 책을 펴고 숙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저를 무척 반기시며, 아들이 집에 친구를 처음 데리고 왔으니 맛있는 걸 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피자나 치킨 같은 걸 기대했지만, 떡만 들어간 떡볶이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곳 산길이 아침에 너무 어두워서 해가 뜨고 날이 밝아진 후에야  내려갈 수 있다고요. 

‘아, 그래서 매일 지각하는 거였구나!” 

그날 집에 돌아가면서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여길 한 번 와 본다면, 매일 그렇게 혼 내시지만은 않을 텐데. 친구를 용서하실 수 있을 텐데.’ 

제가 예전에 한부모가정 청소년들을 교회로 전도해서 돌볼 기회가 있었는데, 약 육 개월 정도 섬기다가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 있을 때 그 학생들한테 편지가 왔는데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약속을 지키려고 그동안 교회에 잘 다녔는데, 지난 주일에 어떤 분이 슬리퍼를 신고 왔다고 마구 혼내셨어요. 무서워서 더 이상 교회에 못 갈 것 같아요. 죄송해요.” 

교회에서 어딜 놀러 갔는데, 회비를 안 가져왔다고 핀잔을 들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마음이 씁쓸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한 번만 들여다봤다면, 슬리퍼 신고 교회 오는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이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지를 한 번만 생각해 봤다면, 회비 못 낸 것쯤 용서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불우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불쌍하다고 해서 모든 잘못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을 기어코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너희끼리 뜨거운 사랑을 품으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리라. (벧전 4:8)

“그 사람이 그렇게 불쌍하게 된 것이 내 잘못인가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지옥의 멸망으로 향하고 있던 우리의 그 불쌍한 운명도 하나님 잘못이 아니었고,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하나님 잘못이 아니었으며, 그 때문에 우리 모두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은 더더욱 하나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용서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용서해야 합니다. 

그때에 그의 주인이 그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오 악한 종아, 네가 내게 애걸하기에 내가 네게 네 빚을 전부 용서해 주었은즉 내가 너를 가엽게 여긴 것 같이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겼어야 하지 아니하느냐? 하고 (마 18:32-33)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내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그 쓴 뿌리를 제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용서 말고 더 좋은 선택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를 위해서, 그리고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십시오. 그때에 비로소 우리의 마음속 쓴 뿌리가 뿌리째 뽑힐 것입니다.

  • ?
    리바이 2018.03.01 20:50

    귀한 글을 통해 제 마음속 쓴 뿌리를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
    피시 2018.03.05 21:33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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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우당 이회영 : 전재산 바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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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3월 폰배경/ 모니터용 바탕화면 : 참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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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쓴 뿌리 vs.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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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브렉시트로 이해하는 영국 역사와 성경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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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문 두드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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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빌리 그레이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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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작가가 되고픈 청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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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과학자들은 신을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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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예수님이 참 신이면서 참 인간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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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성막 마감재는 해달 가죽인가, 오소리 가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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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새해... 감사로 채우는 새 마음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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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수술실이 기도실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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