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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23:05

버스에서

조회 수 147 추천 수 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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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이다헌_서울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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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전광 안내판에는 '시스템 점검 중', 한 줄의 성의 없는 문구만이 띄워져 있었다. 배차 간격대로라면 몇 분, 혹은 몇 십 분 이내에는 저 신호등 너머에서부터 육중한 차체를 드러내며 나에게로 다가올 터였다.

 

버스 한 대가 모퉁이를 돌아 내 앞에 잠시 멈춰 섰다가, 곧바로 떠나갔다. 나는 주머니 속의 전원 꺼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정류장 주위를 하릴 없이 서성거렸다. 그때, 저 만치에서 한 할머니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분은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슬쩍 엉덩이를 떼어 자리를 조금 옮겼다.

 

겨울의 밤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은 물감을 짜놓은 듯 새까맸다. 형광등의 창백한 불빛이 그분의 주름 진 얼굴에 서리었다. 할머니는 뒷유리창에 몸을 기댄 채로, 그대로 꼼작 않고 앉아 있었다. 어쩐지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입가에 작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를 실어갈 버스는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었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버스들이 몇 대이든지, 어제나 오늘이나 나는 단 한 대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내일이나 모레나 단 한 대만을 기다리면 된다. 마냥 기약 없는 기다림이 아니기에, 나는 언제까지나 기다릴 각오로 이곳에 서 있을 수 있다.

 

 

 

2

 

‘끼이익’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반사적으로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기사 아저씨가 내뱉는 욕설을 듣고, 하마터면 앞차와 부딪힐 뻔했음을 알았다. 사고가 안 났으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뒤로도 버스는 달리는 내내 몇 차례나 더 급정차를 하였다.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기사 아저씨를 째려 봤는데, 오히려 아저씨가 나보다 더 화나 있는 듯해서 그냥 다시금 잠자코 고개를 돌렸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갑작스러운 충격에 꼴사납게 넘어지거나, 거의 넘어질 듯 휘청거렸지만, 완전히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양 손목에 힘줄이 돋아날 만큼, 나는 죽기 살기로 안전 손잡이를 붙잡아야만 했다. 우스꽝스럽게 생각될지라도 시계추처럼 대롱대롱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충격들 -- 이별과 상실, 깊은 고독과 외로움, 또 오해와 왜곡 등, 세상의 모든 힘겨운 일들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어떡해야 할까.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수밖에 없다(눅 8:44).

 

자칫 하면 놓칠 정도로는 모자라다. 있는 힘을 다해, 없는 힘까지도 다해서, 그분을 붙잡아야 한다. 갓난아기가 제 엄마를 붙잡듯이, 벼랑 끝에서 나뭇가지를 붙잡듯이, 급정차와 급발진이 반복되는 버스에서 손잡이를 붙잡듯이, 그분을 붙잡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런 생존 본능이다.

 

나의 몸은 이 순간에도 흔들렸다가, 잠잠했다가, 흔들렸다가, 다시 잠잠하기를 반복하고, 나의 손은 불안한 듯 위로 향했다가,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 profile
    라스트러너 2019.01.16 05:47
    아멘! 그분만 붙들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 profile
    David 2019.01.16 14:48
    일상 속의 묵상이 글로 잘 표현되어 있네요.
    제대로 된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이리 많으니... ㅠㅠ
  • profile
    Joseph 2019.01.17 20:24
    할머니 얘기가 더 나오는줄 알았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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